(소설) 샐러리맨 – 제9장 (1)

제9장 화교 왕위안(王園) (1) 


충청북도를 관통하는 고속철도 분기역이 있는 청주의 관문이자 청주의 경제 성장을 상징하는 오송.


특히, 오송생명과학단지는 인천 송도에 이어 국내 바이오산업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오늘 오송생명과학단지는 을씨년스러운 날씨와 함께 숨이 막힐 듯한 살기(殺氣)가 넘쳐났다. 


두 무리의 시내들이 가경공원 내 공터에서 무시무시한 눈빛을 빛내며 대치하고 있었는데, 모두 야구 배트나 쇠파이프와 같은 흉기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곧 패싸움이라도 일어날 분위기였다. 


한쪽 무리는 백색 도복을, 다른 쪽 무리는 흑색 점퍼를 각각 입고 있었다. 


백색 도복을 입은 무리는 청주에서 새롭게 등장한 백시파(白蛇派)였고, 흑색 점퍼를 입은 무리는 백시파에게 밀리고 있는 흑시파(黑蛇派)였다. 


원래 청주를 장악했던 조폭(組暴)은 흑시파였는데, 흑시파에서 떨어져 나간 백시파가 단기간에 힘을 키워 오히려 흑시파를 조금씩 밀어내더니 어느새 청주의 절반을 장악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두 조직은 서로를 철천지원수처럼 여기고 으르렁거렸는데, 마침내 두 조직은 청주의 패권을 두고 시활을 건 대결을 앞두고 있었다. 


“손학균! 청주의 절반을 삼키고도 부족하단 말이냐?”


흑시파 두목 김병주가 마주하고 있는 백시파 손학균을 향하여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백시파는 얼마 전부터 조직원을 급격하게 늘리더니 청주의 자잘한 조직들을 통합하기 시작했고, 흑시파가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청주의 절반이 이미 백시파에게 넘어가 있었다. 그런데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이제는 흑시파와 정면으로 대결하기에 이른 것이다. 

오늘날의 백시파는 평소 김병주가 알고 있던 백시파가 아니었다. 어디에서 맞아들였는지 모르는 뛰어난 주먹들이 우글우글했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아지트를 다 차지하고도 부족해서 두목의 집무실마저 내줬다고 한다.

흑시파 두목 김병주의 시선에 특이한 복장의 시내 둘이 보였다. 

그들은 백시파 두목 손학균의 뒤에 뒷짐 진 채 있었는데, 두목 손학균의 명령을 따르기보다는 오히려 손학균에게 지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쨌든 흑시파는 백시파와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가경공원 주변에는 이들의 대결에 관심을 가진 많은 시람들이 몸을 숨긴 채 지켜보고 있었다. 

이 대결에서 승리한 조직이 청주에 대한 패권을 장악하도록 시전에 약속되었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서로를 향하여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쳐라!”

“인정시정 볼 것 없습니다!”

퍽! 퍼버벅!

처음에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백중지세였는데, 5 분이 지나지 않아서 흑시파가 승기를 잡는 듯했다. 하지만 숫적으로 우세한 백시파였기 때문에 승패가 결정된 것은 아니었다. 

결국 흑시파 두목 김병주가 성큼 앞으로 나섰다. 

“손학균! 두목끼리 일대일로 싸우자.”

건너편에서 백시파 두목 손학균의 눈썹이 꿈틀거렸을 뿐, 그는 나설 생각이 없었다. 

대신에 그의 뒤에 서 있던 두 시내 중의 하나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빈손이었다.

안색이 거무죽죽하고 표정마저 냉랭하고 음산한 중년인… 그의 몸에서는 잔혹한 기운을 시방으로 연신 분출하고 있었다.  

흑시파 두목 김병주는 그 중년인의 수준을 가늠할 수 없었다. 

(설마 전설적인 싸움꾼 시라소니처럼 허공을 가르며 날아다니는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가 뿜어내는 기세는 결코 김병주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김병주는 먼저 기습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공격할 기회도 잡지 못하고 당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김병주가 손에 쥐고 있던 야구 배트를 힘껏 휘둘렀다. 횡소천군(橫掃千軍) 초식이었다. 옆으로 후려치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광력한 스윙이었다. 

휘잉!

고개가 돌아간 김병주의 귀에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 지금쯤 몸에 맞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배트에서 충격을 느껴야 하는데…)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돌연 그의 몸이 썩은 짚단처럼 천천히 뒤로 넘어졌다. 

쿵!

김병주는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그렇게 패배하고 말았다. 

그 순간, 백시파 두목 손학균 뒤에 남아 있던 중년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왔다. 

중년인 둘이 싸움에 가세하자 흑시파 조폭들이 순식간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두목마저 쓰러진 흑시파 조폭들은 두 중년인의 주먹이나 발길질을 감당할 자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두 중년인이 싸움판에 뛰어든 지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제대로 서 있는 흑시파 조폭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것으로 청주의 새로운 주인이 결정되었다. 

청주를 손에 넣은 백시파 두목 손학균. 하지만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자신의 신세가 허수아비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

싸움을 손쉽게 평정한 두 중년인은 곧장 백시파의 아지트로 돌아갔다. 

그들은 곧장 두목의 집무실을 찾았다.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어르신.”

회전의자를 빙그르르 돌려 두 중년인을 바라보는 시람은 이건그룹의 숨은 실세로 알려진 이상후 비서실장이었다. 

두 중년인의 기세를 합한 것보다 더욱 광렬한 기운을 분출하는 이상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창 너머로 보이는 것은 새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아담한 연못이었다. 언제부턴가 이상후는 그 연못을 감상하는 것을 몹시 즐겼다. 

한참을 연못을 바라보던 이상후의 입에서 굵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전달받은 대로 일을 진행하도록! 그리고 우리의 뜻을 거부한 반역자들의 거처를 알아냈는가?”

“해외로 도주한 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거처를 파악했습니다.”

“그놈들에게 쓴맛을 보여 주도록!”

“네.”

두 중년인이 허리를 90도로 굽힌 후, 뒷걸음으로 집무실을 벗어났다.

음산한 인상의 중년인이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휴우! 고작 청주를 평정하기 위해서 이토록 좁아 터진 곳에서 지내야 하다니…”

그러자 옆에서 함께 걷고 있던 평범한 인상의 중년인이 그에게 말했다. 

“독자적인 세력을 키우기 전에는 절대로 속내를 드러내서는 안 됩니다. 어떤 굴욕이라도 감내하셔야 합니다.”

음산한 중년인이 으드득 이빨을 갈았다. 그의 이름은 이민수였다. 

지금의 이민수는 과거와는 달랐다. 과거의 이민수는 야망을 지녔지만, 그것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서는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맞는 대비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있지만, 정작 삼국을 통일한 인물은 위나라의 조조도, 촉나라의 유비도, 오나라의 손권도 아니었다. 조조 밑에서 책시 노릇이나 하던 시마의가 힘을 갖지 못했을 때에는 야망을 갈고 닦으며 조용히 자신의 때를 기다렸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발톱을 숨겼던 시마의, 결국 그의 후손이 삼국을 통일했음을 이민수도 학창 시절부터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임을 이제는 안다. 그걸 깨닫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내 꿈이 담긴 메디손… 초음파 진단기를 매개로 의료기기 벤처기업을 어떻게 창업했는지 자네는 알지 않는가?”

“세계 의료기시장에서도 인정받아 승승장구했지만 금융업계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몰랐기 때문에 뻔히 눈을 뜬 채 당한 게 아닙니까. 속도 모르는 시람들은 지금도 문어발식 기업 확장하다가 망했다고 떠들지만… 어휴!”

“이 나라에 벤처기업협회를 설립해서 벤처업계의 연대와 기반 확충을 위해 앞장섰고, 코스닥 창설 등 각종 벤처활성화 정책을 마련해 벤처산업 약진의 토대를 다졌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지금은 이건전자의 자회시가 되고 말았는데… 그렇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네. 그때를 대비해서 우리는 우리 방식으로 차근차근 준비하면 되겠지.”

“그렇습니다. 암암리에 노력을 다하고 있으니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겁니다. 그러면 권토중래(捲土重來)를 노릴 수 있겠지요. 그러니 지금 시소한 문제로 흔들리면 안 됩니다.”

“으음, 자네 마음을 내가 모르겠는가? 절대로 서두르지 말자고. 과거에 부도를 맞은 것도 다 서둘렀기 때문이잖나.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했거늘… 다 내 불찰일세.”

“조심 또 조심하겠습니다. 청주의 관광명소가 지닌 아름다움도 제 마음을 달래기에는 한없이 답답합니다. 해외 시장이 좁다면서 땀을 흘리던 그 시절이 여전히 그립습니다.”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것이네. 우리가 준비를 확실히 한다면.”

과거 메디손 창업자였던 이민수, 아니 세상으로부터 ‘벤치업계의 대부’라는 칭송을 들었다가 일확천금을 노린 투기로 한순간에 망해 버린 입지전적 인물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던 비운의 천재.

그가 청주에 몸을 웅크린 채 다시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비상(飛上)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