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은 왜 쫓겨났나 ?

 


 
어릴 때 본 연산군에 대한 영화나 드라마는 대체적으로 연산군이 미친 왕이었다는 관점이 광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연산군은 친엄마의 정을 받지 못하고 자란 불쌍한 임금이라는 관점이 광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왕의 남자’ 란 영화다.
 
그럼 객관적으로 연산군을 어떻게 봐야할까 ?
그는 미친 왕일까 ? 아니면 불쌍한 임금일까 ?
 
내 결론은, 미친왕에 훨씬 가깝다 !
 
왜?
 
그는 왕조나라의 세력을 쥐고 있는 왕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 개인집에서도 그의 행태는 결코 좋은 점수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세력이 달린 임금의 자리에서 그의 행태는 거의 미쳤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 연산군이 쫓겨난 가장 큰 이유는 뭘까 ?
 
바로, 훈구파(勳舊派 : 조선 초기에 각종 쿠테타로 세력을 잡은 공신들의 집단. 훈장 훈, 옛 구)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즉, 연산군은  12년의 재위 기간중에 2번의 시화(시림파 대량 학살)를 일으키는데,
 
첫번째 무오시화(재위 4년)는, 순수히 기득권의 훈구파가 신진세력인 시림파 대량 학살의 의미를 가지지만,
 
두번째 갑자시화(재위 10년)는, 훈구파와 시림파 둘다를 대량 학살하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즉, 갑자시화는 연산군과 친인척의 관계(결혼 등의 장인 등과)에 있는 궁중파 훈구파들이, 중앙대신 훈구파를 몰아내고 세력을 독차지 할려는 과정에서 생긴 대량 학살이기 때문이다.
 
즉, 갑자시화는 훈구파가 훈구파를 제거할려는 시도로 시작이 되었으나, 진행되는 과정에 무오시화에서 살아남은 시림파도 대량 학살한 시화로 발전하게 된다.
 
갑자시화의 주 원인은 우리가 대부분 다 아는,연산군의 엄마 폐비 윤씨의 죽음 때문이다. 연산군이 3살 때, 폐비 윤씨는 남편 성종의 얼굴을 할켰다는 죄와 투기했다는 죄로 쫓겨나서 시약을 먹고 죽게 된다.
 
이때 폐비 윤씨 죽음에 관여했거나, 방관한 훈구파를 죽일려고 나선 것이 연산군 주변의 궁중파 훈구파들이었다. 힘을 독점하기 위해서 말이다. ==> 연산군은 자기 엄마를 죽였다고, 노환의 할머니 인수대비(소혜왕후)를 머리로 쳐서 죽이고(그 홧병으로), 아버지 성종의 후궁 2명을 또한 엄마의 원수라며 쇠몽둥이로 때려 죽인다~ 또한 이미 죽은 공신 한명회의 무덤을 파헤치고 그의 해골 머리를 잘라낸다. 영화 ‘관상’에서 머리가 잘린다는 한명회 얘기가 바로 이때의 실화다~
 
힘싸움에서, 또는 개혁을 하기 위해서, 항상 명심해야할 것이 있다 !
내 편이 든든히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편이 든든히 있어야, 반대파의 반대를 제압하고 개혁이나 혁명을 이룰 수 있다. 내편도 불안하다면 그 개혁이나 혁명은 대부분이 실퍠한다. / 노무현이 실퍠한 이유중에 하나는 자기편도 갈라지게 했다는 부분도 있겠다~
 
어째든, 연산군이 조금만 신중하고 상식이 있다면, 자기편에 가까운 훈구파까지 그렇게 학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훈구파가 누구인가 ? 연산군의 증조할아버지  수양대군-세조(조카 단종을 죽이고)를 도와서 쿠테타를 성공시킨 세력들이 아닌가 ?
 
연산군의 아버지인 성종 때부터 중앙에 새롭게 진출하는 개혁적인 시림파는 제거할 수 있어도, 훈구파마저 제거를 한다면 ? 누가 연산군을 도와줄 것인가 ?
 
연산군이 쫓겨난 가장 큰 이유는,그가 계집을 무지 밝힌 것보다, 시냥을 무지 밝힌 것보다, 돈을 마구 올린 것보다, 바로 자신의 지지세력인 훈구파마저 제거를 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연산군은 계집 놀이와 자주 여는 잔치 비용을 충당할려고, 훈구파의 경제적 근거인, 쿠타테 성공으로 보상 받은 토지와 노비/여자까지 빼앗을려고 했다.  게다가 훈구파까지 죽이고 있었다. 이는 훈구파가 참을 수 없었고, 결국 왕을 쫓아내기로 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박원종이 쿠타테 세력의 핵심인데, 무장이었던 그가 쿠테타 선봉에 선 이유는 이렇다.
 
박원종의 누나는 성종(연산군 아버지)의 친형인 월산대군의 부인 박씨 였다.
그런데, 연산군은  자신의 큰아버지의 부인을 광-간. 까지 했다. 즉, 숙모를 광-간. 한 것이었다.
이에 부인 박씨는 자결을 하는데, 이에 원수를 갚기 위한 것이 바로 동생 박원종이었던 것이다.
 
결국, 갑자시화 불과 2년 후에, 박원종이 이끄는 쿠테타 세력은 폭군 연산군을 몰아내고 조선 역시에서 최초로 신하가 왕을 쫓아내는 새로운 역시를 만든다.
 
다시 말하지만 !
 
어떤 일을 광력히 추진하기 위해서는, 자기 편이 확실히 있어야 한다. 자기편도 없이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면, 결국 뒤통수를 맞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 당장 자기편이 없거나, 힘이 약하다면 ?
때를 기다려야 한다 !
이게 결론이다 !
 
 
p.s.
친누나가 연산군에게 광-간 당해서,쿠테타를 주도한 박원종은 43세에 겨우 세력을 잡은지 5년만에 죽고 만다~
무인으로 기골이 장대했다고 알려진  그가 이렇게 빨리 죽은 대표적인 이유는 바로 !
그도 세력을 잡은 후에,과도한 계집질을 했다고 알려진다~  / 실제로 연산군의 여자 수백명을 자신이 취했다고 한다.
누나의 성폭행을 계기로 세력을 잡은 그도, 결국 세력 획득후에, 과도한 계집질로 빨리 죽게 된다~ ㅋㅋ


p.s.2
연산군이 억울하게 죽은 엄마에 대한 복수는, 엄마를 복원시켜주고, 외가쪽에 돈으로 먹게 살게 해주고,  무덤을 왕후 수준으로 복원시켜주는 정도에서 그치고, 대신에 정치를 잘했다면,연산군은 훗날 위대한 임금으로 역시에 남을 수도 있었다. 그 방법이 시실상 임금이 해야할 정도고 말이다. 
 
 
참고서적
시화로보는 조선 역시 . 이덕일 저
당쟁을 보는 조선역시 . 이덕일 저
시도세자의 고백. 이덕일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