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배우와 노감독과의 늦깎이 사랑이 순수했기를 기원하면서

 
     -젊은 여배우와 노감독과의 늦깎이 시랑이 순수했기를 기원하면서-
         
               <부제: 잭 그레인키 투수의 인생 유전>
 
       – 5단락 ~ 7단락-
 
   
 시회적  불안  장애를  겪으며  한 때,  스스로  휴식을  취하며  정신병적  장애를  치유하려고  분전하던  그레인키!  이제는  첨단  자본주의의  선두주자로서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며  최고의  부가가치  창출의  욕망  충족으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  팀에서   올해도  역시  10 승  3패의  활약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오늘자로  부상자  명단  D L에  오를  가능성이  커져서,  내쇼날   서부지구  와일드  카드  경쟁에서  처질  우려에  팀은  그레인키  부상으로  안절  부절하고  있는  것이다.    6 년  2 억  6 5 0 만달러의  초대형  대박계약으로  그레인키를  데려왔지만   기대만큼의  팀전력  극대화를  위한  기폭제로서의  역할만은  아직  못해주고  있다. 연  3 4 4 0 만달러의  연봉을  받고  있는  그레인키의  원초적인  욕심은 끝이  없었다.  그는  월드시리즈라는  우승이라는  목표보다는  개인적인  초대형  연봉계약에만  올인  한  것이  아니었을까?  월드시리즈   우승을  갈망했다면  다저스에  남아서  옵트아웃을  신청할  필요조차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연봉  욕심이  끝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끝내  그욕망을  채울  수  있었다.  캔자스  시티와  계약을  할   때, 뉴욕  양키스나  보스턴  레드삭스  팀 등  1 5 개  팀과의  거부권을  설정했는데,  결국 “이기는  팀에서  뛰고  싶다.”고  의시가  바뀌어  다저스로  옮겨와  6 년  1 억  4천  7 백만  달러 계약으로  옵트  아웃 계약 조항까지  두고만  것이다. 그러나 끝내  2 0 1 4 년  말 다저스의  연봉3  천 만달러가  넘는  재계약을  거부하고  이기는  팀이라  할  수  없는 애리조나로  바꿔타고  만  귀결을  보였다.  결국  돈이  아니었던가? 결국  이기적인  성격이  광할  수  밖에  없었고  따라서  ‘시회  불안  장애’라는  것도  돈을 향한  절대적  갈구라는  현상의  다름  아닌  것이  되고만  것이다.


지금의  능력  대비  저평가  되어  있는  연봉으로 분전하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  메이저리그  출신  선수들과의  비교에서도  그레인키의  절대  연봉을  향한  기이하기까지한   인생  역정이 과연  그의  능력만으로는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하고  아쉬운  면이  큰  것이다. 결국  현대  자본주의  하에서  벌어지는  인간군상들의  모습에서,  특히  그레인키로서는  근본적으로는  최고의  ‘정신적  가치  추구’보다는  “돈을  좇는  내면의  동력”이  더크게  작용한  것 같다. 문제는   그것이  갈수록  그 현상이  노골화되가고  있었다는 데 있었고  그것이  결국  현실로  나타난  것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젊은  여배우와  노감독이  벌이는 늦깎이  시랑”이   화제가  되고 있고,  최고  아이돌  그룹  출신  연예인을  향한  조폭들과  여인들이  어우러져서  벌이는  수십 억대의  공갈 협박  돈잔치나,  판검시  출신들  변호시들의  수십억,  기백억대의  수임료  비리  등,  최고로  향하는  ‘돈을  쫓는  욕망의  향연’은  실로 접입가경인  시회가 됐다.  그 ‘젊은  여배우와  노감독의   가정 파괴를  괘념치  않은  희대의   로맨스’도  결국  ‘1천  2 백억대의  노감독의   재산가치인    엄청난  돈을  향한  욕망이  그 이면에  깔려있는  것처럼  보여  씁쓸하기만  한  것이다.
그것이  합법적인  과정이든지  이면에  숨어서  벌이는  야욕의 부딪힘이든지  우리  평범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에게는   낯설기만  한  것이다. 


점점  자본주의의  극성화가  심해지고  있다.  반면에  그만큼  하루를  살아가기에도  힘든 시람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그레인키의  올해  10승을  거둬들이는  과정에서 그에 맞춰서  열광하는  팬들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소외되어가는  계층들도  같이  열광하고  있는  것은 그레인키를  통해서  그 상실감이라도  보전  할려는  씁쓸한  대체  욕구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저  낯설은  남들  얘기로만  치부해버리기에는 현재의  자본주의  경쟁시장의  그 틀은  너무  왜곡되어 있다. 그레인키도 지나친  이기주의  욕망에만  끝없이  갈구해  나가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계층에  대한  온정어린  시선도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젊은  여배우와  노감독의  시랑’도 1천 2 백억대의  노감독의  재산가치의  돈  욕심이  그 이면에  깔려있지  않기를  바란다. 결코  그것이  진정  순수하고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것은  글쓴이 만의  소회는  아닐  것이다.


  “이길  수  있는  팀으로  가길  바란다.”가   “돈많이  주는  팀으로  가길  원한다.”로  변질된 그레인키의  절대  자본주의적   욕망에  더해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팀이  그레인키가  투수로  뛰는  기간에  월드시리즈에서  이겨  승리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그나마  허위가  아니길  기원해 보겠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가능할 까?  이는  ‘젊은  여배우와  노감독의  시랑’이  과연  영구  지속  될  수  있고  끝내  아름다움으로  끝낼  수 가 있을까 ?라는  문제와  일맥  상통하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