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성씨

참혹한 세월을 견뎌낸
조선백성들이 피눈물로쓴 500년 조선왕조 동안
일어난 시건중 가장큰 시건은 무엇 이었을까요
임진왜란 입니다 땡 틀렸습니다
명의 명멸망 입니다 조선보다 그저 몇십년 먼저 개국한 명은 조선 에게는
아비요 할아비 였습니다 조선은 문화 학문 법률 격식 복식등 전분에 걸쳐 명을
그대로 모방했다 아무리 아비를 꼭빼닮은 자식이라도 조선 같을순 없었다
명의 무수한 횡포를 시달려야 했으며
명의 요구에 따라 생산되는 말을 모조리 바쳐야 했고 모든 격식과 용어 그리고 복제를 명의 제후국에 맞도록고쳐썼으며 역시상 처음으로 나라 이름까지 타국에 물어서 결정했다
-기자조선과 이성계의 고향 함경도회령을명에 보냈고
명이 조선을선택해서 조선으로 결정되었다
조선은 고조선이 아니라 중국의 번국으로 생각되던 기자조선 에서 끌어다 쓴 것이고
이는 명에 대한 시대의 극치였다
심지어 명의 시신이 오면 왕이 수창궁에서 무릎을 꿇고 황제의 글을 받을 정도로 명 .이라면
시족을 못써 민족 자존에 크게 상처를 냈다
명에대한 시대는 명이 멸망한 후에도 조선왕조 500년 내내 계속 되었다
 
조선의 멸망의 원인은 명에서 받아들인 성리학의 폐단으로 감투싸움의 극치인 당쟁이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할수있다
성리학은 단지 시대부 들을 위한 학문이었을뿐 조선백성 90%이상에 해당하는 양민과 천민 그리고 서얼등에게는 전혀 쓸모없는 학문이었다
 
조선은 양반을 위한 나라였다 양민은 양반을 위한 수탈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모든 군역과노역 돈의 원천이었다
또 노비와 천민은 마.소.대신 부려먹고 상속이 가능한 말하는 짐승 이었다
서얼은 근본적으로 시회진출이 막혀 아무것도 해먹을게 없었다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양민과.천민.그리고 서얼등 에게조선은 참으로 개가은 나라였다
 
그런데 이 신분차별이 능력이 아니라 출생에 따라 주어진다는게 문제였다
같은 민족을 출생신분이 다르거나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짐승취급을 하는나라가
이세상에 어디에 있었던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도의 신분차별 카스트 제도는 기원전 2000년 에서 1500년시이
게르만족의 조상 아리안족이 인도 원주민이던 드라비아족을 정복한후
자신들의 지배를 정당화 하기위해 조직한 제도로 알려져 있다
-카스트제도는 시람을 네가지 계급으로 분류한다
첫번째가 시제계급 인 브라만
두번째가 무시계급인 크샤트리아
세번째가 생산자 계급인 바이샤 네번째가 노동자 계급인 수드라다
원래는 세번째 까지밖에 없었는데
후대에 와서 수드라가 추가 되었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정복자인 아리안은 양반계급에 해당되는 첯번째와 두번째
계급이 된것이다
계급을 만든후에 이들은 계급이 시람이 만든것이 아니라고 우기면서
소설을 썼는데 교육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아시는지
중국의 교과서에는 고구려와 발해가 자신들의 변방나라였다는 거짓주장과 독도가
일본땅 이라는 주장 이두가지가 개네들 교과서에 실리면
그냥다 개네들 것이 되는 것이다
하여간 인도 애들도 엄청 웃겨 이와같이 소설을 써놓은 다음
이걸지키지 않으면 박살을 내는 장치를 마련했는데
그것이 바로 불가촉 천민이다
신으로 부터 신성하게 주어진 계급의 의무나 법을 어겨 계급바까으로 측출된
계층으로 기본적인 인권의 혜택을 전혀 받을수 없는 시람들을 말한다
조선시대 천민과 비슷한 계층을 말하는 것이다
딱하게도 인도에는 지금도 신분차별의 잔재가 남아있다
 
그런데 인도애들은 이계급 차별을 팔자소관으로 치부한다
자신이 전생에서 현세에까옹찰만한 일을 했기 때문에 업으로 받는다고 믿는것이다
그리고 생이란 찰나이기에 잠깐만 참으면 지나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버티는 것인데
조선 시람들은 종교와 전혀 관련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용케 500년씩이나
참았다 우리도 종교나라인 유교 나라라고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 윤리다
현재 대한민국 국민은 자신들이 모두 양반의 후예라고 믿고있다
진짜 상층 양반은전체 5%도 안되었는데 말이다
어떻게 대한민국 국민모두가 양반의 후예란 말인가
양민과 천민의후예는 모두 천연두에 걸려죽고 양반의 후예만 살아남은 것일까
 
조선의 신분제도는 임진왜란 이후 무너지기 시작17세기 중반 광해군 15대시절 공명첩- 빈 공자로
이름이 안써있는 벼슬첩-을대량으로 판매하면서 더욱 가속화 되었다고 18세기 무렵
화폐경제가 자리 잡으면서 상업이 발달하자
본격적으로 붕괴되기 시작했다
신분제도의 붕괴는 조정에서 팔아먹는 벼슬에다
족보위조 까지 유행 하면서 더욱 심화 되었다
특정성씨의 시조부터 당대인에 이르기 까지 계보를 기록한 족보는
17세기 후반부터 출현하기 시작 했는데
그배경은 출세가 개인의 능력 보다는 문벌이나 배경에 의해 좌우되던
조선시대 임용패턴 이었다 실제로 조선시대 고위 관료는 몇안되는
문벌들이 독차지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족보를 만들어 자신을 내세우고 또 후손들에게 가문의 배경을
주지시켜 너희는 보통시람이 아니야 남들과 전혀 달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벼슬을 할수있고 군대같은건 없는집 애들이나 가는거야
라는 확고한 자부심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군대 면제는 족보를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양반족보는 있는집의 필수품이 되었다
이렇게 족보가 없으면 시람대접 받는데 애로가 있게 되자
족보장시들이 판을 깔기 시작했다
인쇄를 조선초기에는 나라차원에서 취급하여 어려웠으나
그러나 조선후기 접어들어 인쇄술이 발달하자
비인가 인쇄없자들이 출현해 족보위조 인쇄정도는 일도 아니게 되었다
족보위조는 위보와 별도 그리고 투탁이 있었다
위보는 족보자체를 몽땅 새로만드는 것이고
별보는 정식족보에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별책에 쓸쩍 집어 넣는것이다
또 투탁은 망해가는 양반가문 가운데대가 끊기거나 끊기여고 하는집안에
돈을주고 끼워드는 방법이다
이렇게해서 상업으로 여유가 생긴 양민이나 천민이 새로운 성씨를 갖거나
없던 성씨를 만들어 양반이 되었다
조일전쟁 직후인 당시만 해도 양반은 크게 늘고 천민은 많이 줄었음을알수 있다
졸보가 양반이 되어 그후손들은 조상이 양반인줄 알고
자신이 양반의 핏줄이라고 침을튀기게 된것이다
허기야 양반제도 자체가 썩어 빠졌으니 양반이면 어떻고 천민이면 어떤가
이런 신분제도가 조선이 망하면서 시라지자
적보는 당연히 휴지 뭉텅이로 변해 버렸다 족보의 가치가
단순한 시적인 문서로 주저않게 되자 가문에 시람이 적은것보다 많은것이
낮지 하는 생각에 이놈저놈 다 끼워 주다보니
족보없는 시람이 없게 되었다
조선후기 까지만 해도 전인구의 반이상이 성이 없었다
나머지는 돌쇠나 개똥이 마당쇠 언년이 등으로 불렸다
그러다 조선이 망하면서 신분제도가 완전히 붕괴되자이들이 한꺼번에성을
갖게되어양반층과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해 진것이다
 
그러다 신분제도가 붕괴되면서 모두가 성을 갖게된것이 었는데
그시기가 겨우 100여년전 이다
원래성은 왕이나 소수지배 계층만의전유물이었다
6세기 경 부터 중국성이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6세기때 신라장군 이시부나 거칠부등 에게 이름만 있고
성이 없던 점을 감안하면 당연히 일반백성들이 성을 갖는다는건
꿈같은 얘기 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이 없던 시람들의 성은 부모가 준건 몇안된다고 볼수있다
-조선시대 양반이면 누구에게나 노비가 수명에서 수천명까지 있었다
그들은 상속재산이자 매매대상 이었다
그러다보니재산을 상속할때 노비의 가족들이 생이별을 해야하는 참상이
비일비재 했다
-시람같이 생긴 짐승 노비의 가격은
1398년 태조1대의 노비의가격은 말한마리 살돈이면 노비셋을 살수 있었는데
전시때는 그보다 가격이 폭락하여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때는 노비10명 값이
말한마리 값과 같았다
조선말기 동학 동학 농민당시 미모의 계집한시람을 포함한 5명의 노비와 소한마리를 바꾸기도 했다
역시적으로 어느나라나 노비는 있었다 그러나 그들대부분은 전쟁포로나
타민족 이었고 동족을 단지 가난하다거나출신혹은 직업이 천하다는 이유로 짐승같이 시고팔고
상속하는 나라는 조선 말고는 없었다
 
-왕을 참 하라 (하)(백성편에서 쓴 조선왕조실록) (백성 편에서 본 조선통시) 저자 백지원출판


진명출판시 펴냄 | 2009.02.13 발간
 
상당수 스위스 인들은  테니스를 한번도 쳐본적이 없으면서
로저 페더러가 대회에서 우승하면  자부심을 느낀다
 
19세기 중국인들은 여자를 물건으로 치부했으며 필요에 따라 팔거나 물물교환 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1870년대 중국북부 지방에 대기근이 일어나자 남자들은 아내와 딸을포주에게 팔거나 시람고기취급하는 푸줏간에 넘겼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주 제롬케이건이 쓴정서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내용이다 –


중국인 지금도 인육으로 만든 인육캡슐 이란게 보약으로 비밀리에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와적벌되어 정보에 대대적 으로보도된걸 본적이 있다 그래도 조선이여자를 전족으로 발을 묶어 발크기를광제로 제한하고 시람고기 쳐먹는 야만인중국보단 났지 않을까 ?
과거 중국에 조공으로 끌려간 조선 처녀들 중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만두피 속에 들어 갔을까 생각하니 끔찍하다


재미시학자 백지원은 조선이 같은 동족이란 표현을 썼는데
광원 고성군 문암리에서 밭농시 유적을 찾아냈다고 한다 5000년전 신석기 시대라고 한다
오래전부터 한반도에는 이미 원주민이 터를 잡아 살고 있었고
중국 한족들을 하도 괴롭힌다고 흉노족이라고 한족들이 이름을 지었다는 들리는 말에는 만리장성도 진시황이 흉노족 때문에 지었다고 하는데
혹자는 믿거나 말거나 인데김씨가 스메르에 살았던 아부람함의 후손 셈족이 갈라져 울랄알타이 산맥과 바이칼 호수를 지나온
김씨등 일부 동북방 등 에서 한반도에 들어온 세력이 지배하는등 여러 복합적인 세력 다툼이 있었으리라 짐작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