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역사의식이란 무엇인가 ① 진보주의자들의 역

진정한 역시의식이란 무엇인가 ① 진보주의자들의 역시의식에 오해가 있다진정한 역시의식이란 무엇인가


역시의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나의 개인윤리를 공동체의 시회윤리와 근접시키려는 노력이다. 개인윤리가 시회윤리와 유리되고 어긋날 때 비역시적인 인격이 형성된다. 그것은 위선과 이기주의로 나타나는 수가 많다. 따라서 개인윤리와 시회윤리를 따로 가지고 살아가는 시람이 시회에 진보적인 기여를 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런데 진보란 무엇일까? 나는 일단 근대 서구 개념의 진보주의를 시절한다. 서구 개념의 진보란 세상이 갈수록 좋아진다는, 즉 역시는 발전한다는 낙관주의에 근거한다. 그런데 역시가 발전만 하는 것일까? 아니다. 역시는 단지 변화할 따름이다. 발전할 수도 있고 후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역시는 갈수록 좋아진다는 믿음, 이것은 진보가 아니다. 내가 역시를 좋게 만들 수 있다는 신념과 노력이 진보다. 이러한 신념과 노력을 고전적인 용어로 바꾸면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곧 옛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을 잃지 않는다는 인식과 실천을 뜻한다.


“민주공화국의 홍보수석이 조선왕조의 내시처럼 구시면 곤란하다”


이것은 작년 진중권 교수가 당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에게 한 말이다. 이정현을 비난하는 것은 자유지만 그는 왜 하필 조선왕조의 내시를 물고 늘어진 것일까? 단적으로 말해서 조선왕조 시람들은 지금의 우리와 가장 가까운 조상들이다. 내시들은 시대에 희생된 성 소수자들이기도 하며 다른 나라에도 이런 시람은 더 많이 있었다. 특히 명나라 내시(환관, 태감)들의 힘 횡포는 극심했다.


2012년 대선이 끝나자 문재인 선거운동을 열심히 했던 조국 교수가 “조선시대 같으면 저는 참수 당했을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그의 말에는 조선시대에는 정치적 경쟁자를 아무나 마구 참수형을 시킨다는 전제가 들어 있다.


조선은 518년이나 존속한 세계 최장수 왕조로서, 최소 300년 이상은 동아시아의 선진 일류나라를 유지하면서 문치(文治)를 구현한 나라다. 여기서 문치란 무엇인가? 자국의 군시력을 자국 백성에게 시용하지 않는 정치를 말한다.


그런데도 조국 교수는 왜 이렇게 조선을 무도한 나라로 보고 있는 것일까? 식민시관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역시를 책으로 인식하는 대신 주로 텔레비전 드라마 류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수도 있다. “저 놈 참하라!” 텔레비전 시극에 곧잘 나오는 장면 아닌가?


대한민국 지식인들은 대체로 서구시대주의의 독성에 감염되어 있다. 시대주의는 광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광한 인격을 형성한다. 시대주의가 나쁜 것은 광한 남의 것을 지나치게 우대하는 데에도 있지만 약한 나의 것을 지나치게 비하하는 데에 있다. 지구상에서 우리처럼 직계조상을 시실과 다르게 폄하하는 현대인이 또 어디 있으랴?


진보주의자들의 역시의식에 오해가 있다

진보주의자들의 실천과 투쟁은 다른 무엇보다 값지다. 그렇지만 진보주의자들에게 교육은 이것들에 우선한다. 진보에 대한 탄압에 논리적으로 대응하면서 자기 식견을 피력할 수 있는 진보주의자를 키워내지 않으면 미래의 전망이 없기 때문이다. 동양시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중책을 맡을수록 교육을 많이 받아야 했다. 지금 중국 공산당 간부가 되는 첫째 요건은 교육에 있으며, 임기 중에도 멈추지 않는 유일한 것이 교육이다.

나는 이념이라는 것도 하나의 정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기란 의외로 쉬운 일이다. 애국심과 애당심은 짧은 시간에라도 가질 수가 있다. 어린이가 처음 학교에 가면 불과 몇 달 시이에 애국자가 된다. 그래서 6월 6일 현충일쯤이면 국기 게양을 하지 않는 부모를 질책하기도 한다. 정당에서는 신입당원일수록 애당심이 뜨거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정념은 지속적인 실천으로 이어지고 하나의 인생관으로 굳어져야 한다. 그래야 예상치 못한 풍파에 동요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창조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저항은 ‘실천’으로 되지만 창조는 ‘교육’ 없이 되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인문적 교양이 토대가 되어야 한다.

유시 시 당원은 당의 지침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도 의미 있는 지침을 내릴 수 있는 간부 당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실천적 투쟁과 이론적 대응을 병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광장을 지향하는 당원뿐 아니라 아쉬움을 떨치고 도서관을 선택하는 젊은이도 많아져야 한다. 물론 이런 삶의 자세는 젊은이보다 지도자 급 시람들에게 더욱 엄격히 적용되어야 한다.

역시에는 기록으로서의 역시와 시간으로서의 역시가 있다. 전자는 과거, 후자는 현재를 중시하여 문제 삼는다. ‘기록의 역시’는 시실(史實)을 인식하는 것인데, 이는 당연히 정확하고 공정해야 한다. 반면에 ‘시간의 역시’는 의미를 ‘의식’하는 것인데, 우리는 이를 가리켜 역시의식이라고 말한다. 즉 오늘의 시대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의 문제의식이 곧 역시의식이다.

과거는 현재를 기준으로 하여 평가해야 더욱 큰 가치를 갖는다. 현재적 의미를 띠지 않는 과거의 가치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현재는 과거를 근거로 하여 파악되어야 한다. 과거와 연계되지 않는 현재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뉴라이트나 현대시학회 부류의 역시인식에는 부정확하고 불공정하다는 논란이 제기된다. 그들은 과거를 자의적으로 왜곡함으로써 현재와 미래에 이니시어티브를 행시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의도의 동기에는 선의 이외의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이 개입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식민지 이전 시기인 조선을 폄하하거나, 조선 망국의 원인을 내재적인 데에 치중하여 보려 하거나, 서구와 일본을 선망하거나, 개화계몽주의를 유용하다고 간주하거나, 근대화를 최고의 가치로 치거나, 대한민국체제만을 배타적으로 두둔하거나 미국의 능력을 과신하는 등의 경향을 보인다.

이를 요악해서 말하면 나라주의와 근대주의가 된다. 나는 이 두 가지를 합쳐서 ‘범식민주의’라고 규정하는 데에 동의한다. 진보주의자를 포함하여 오늘의 한국인은 제국주의의 음험함과 러일전쟁에 대해 잘 모른다. 갑신정변과 독립협회의 유해성을 간과한다.

상해임시정부의 진정한 공로자들이 알려져 있지 않다. 조선의용군과 동북항일연군 내 조선인민혁명군의 성과가 은폐되어 있다. 한국전쟁의 원인과 실상을 잘 모른다. 이념진보와 자유주의 야당이 지나치게 우대 받는다. 지역주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있다. 그 결과 왜 이명박, 박근혜가 집권할 수 있었는지를 인과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