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와 생태계와 복잡성

제목은 거창하지만, 세상이 참 복잡해지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다양한 변화로 인해 (인터넷, 정책 완화, 교통수단의 발달, 문화적 장벽 몰락, 조기 다국어 교육 등) 전에는 우리의 생태계 안에 존재하지 않던 다양한 요소들이 우리와 연결되기 시작했고, 그 연결고리가 생김으로 인해 독립적인 요소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도나 가능성이 엄청 증가했다. 그래서 세상이 참 복잡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지금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해봤다. 대략 스스로 내린 결론은 다음 정도:
1. 평생 공부해야 한다.
2. 평생 일해야 한다.
3. 평생 건강해야 한다.
4. 평생 진실해야 한다.
5. 평생 사랑해야 한다.

내 세대는 특별한 일(전쟁, 기후변화로 인한 대재난, 질병의 출현, 예수님 재림 등)이 없다면, 아마 결혼을 하고도 100년은 더 살지도 모른다. 25년 단위로 은혼식, 금혼식을 걸쳐 다혼식(다이어몬드)에 티혼식(티타늄)까지도 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노벨상을 타는 분들의 시상 시점 연령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지혜의 고령화가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 역시 커지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영적 생태계. 사람 생태계. 자연 생태계. 문화 생태계.
이 모든 것을 이해하는 교육을 어려서부터 받아야 21세기 뿐만 아니라 22세기까지도 세상을 이끌 지도자들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다. (지금 어린 아이들은 아마 22세기까지 살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이제 2주만 있으면 태우’s log는 6주년을 맞이하게 되고 바로 Season 7에 접어들게 될 것이다. 조급하게 살기보다 오래동안 sustainable하게 사는 훈련을 지금부터라도 해야겠다. 마치 행복한 바이센테니얼 맨이 될 것처럼. =)

‘소셜미디어’에 대한 5가지 단상

요즘에 랜덤하게 들었던 생각을 몇 개를 정리해보았습니다.

1.
소셜미디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것이다. 그것이 단지 “웹”과 “앱”이라는 미디어의 형태로 표현되었을 뿐이다. 우리는 대부분 그 반대 방향으로 생각한다.

2.
소셜미디어 마케팅 캠페인을 구상할 때에 기존 마케팅 캠페인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카페나 MMORPG에 왜 사람들이 모이고 움직이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고, 소셜 미디어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한 명 한 명이 협업자라는 인식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아는 겸손함도 필요하다. 즉, 성공적인 소셜 미디어 마케팅 캠페인은 더 이상 마케팅 캠페인의 형태를 가질 수 없고, 소셜 협업 (social collaboration)의 형태를 가져야 한다.

3.
기업은 사회적인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소셜”해지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영역에서 기업의 브랜딩은 사람인 조직원들이나 팬들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4.
소셜미디어의 과도한 사용은 사람이 그 이상의 무엇인가에 대해 더 목마르게 만든다. 삶을 둘러싸고 멈추지 않고 흘러들어오는 정보의 feed는 우리 영혼에 소금물과 같이 작용할 것이다.

5.
1,2,3,4번을 모두 종합해보자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인은 “의미를 찾고 싶어하는 마음”이고, 이를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소셜미디어는 이것을 우리가 시공을 초월하여 할 수 있도록 해주는 enabler이자 amplifier이다. 협업자가 많은 캠페인을 기획하고 싶다면 모두가 공통적으로 움직여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아젠다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캠페인에 참여하는 한 명 한 명 협업자들과의 관계는 기업 대 기업 파트너쉽과 같은 높은 수준에서 접근할 때에만 열성적인 팬베이스를 구축할 있다. 이를 위해 반드시 소셜미디어 캠페인이 거쳐야 할 단계는 참여자/협업자와의 암묵적인 “협상”의 단계이다. 의미가 부여가 되는 그 순간부터 continuous partial attention dl 가장 판을 치는 소셜미디어에서조차도 몰입의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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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써놓고도 말이 많이 헷갈리네요 ㅎㅎ 이 글이 어렵다고 느끼시는 분들이 혹시 있으실 듯 하여, 앞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위의 생각들을 좀 더 자세히 풀어보기로 노력하겠습니다 ^^

‘권위’에 대한 성경적 원칙 #2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 로마서 13:1-10

지난 번 글에서 ‘웹 2.0 시대’ 또는 ‘네트워크 시대’에 존재하는 새로운 종류의 조직이라는 것에 대해서 고민해보았다. 그것도 동시에 내 마음 속에 반복적으로 드는 생각이 과연 이러한 네트워크형태의 조직에서 우리는 권위를 어떻게 정의해야하는가 였다. (참조: ‘권위’에 대한 성경적 원칙)

첫째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권위’와 ‘권위주의’의 차이다. 나와 같은 젊은 사람들이 가지기 쉬운 막연한 반감의 대상은 ‘권위’가 아니라 ‘권위주의’여야 한다. 왜냐하면 ‘권위’라는 것은 여러 사람이 공존하는 한 늘 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위의 성경말씀을 보면 모든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니 우리 모두는 일단 순종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 위 말씀을 쓴 사도 바울(바올로, Paul)은 당대 최고의 제국이자 권력이었던 로마 제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위 편지를 보냈다. 나는 성경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를 나의 기본적인 권위에 대한 원칙으로 삶으려고 한다. 많은 곳에서 사회개혁가로 추앙받고 있는 예수님도 사실은 마지막까지 권위에 복종하셨기 때문에 그가 결국에는 모든 권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빌립보서 2장 참조) 추가적으로, 예수님의 더 큰 본질 (삼위일체, 하나님의 독생자, 창조주, 구세주, 부활자, 100% 신성과 100% 인성 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사회개혁가 또는 종교가로만 보는 관점은 마치 ‘한국은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이고 한국은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별로 알 필요가 없다’처럼 단편적인 그림만 보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주의하면서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아직 나도 젊어서인지 “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그리고 그런 세상으로 현 세상을 바꾸고 싶은 염원이 매우 강하다. 따라서 자연스레, 우리가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한다면 하지만 위처럼 권위에 순종해야만 한다면 이 세상에 만연하고 있는 이 옳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도 쉬쉬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라는 매우 불편한 질문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자연스레 드는 질문은 “그렇다면, 과연 옳은 것은 무엇인가”이다. 구약시대에는 아직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가 매우 낮았었기 때문에 십계명과 그 외 율법(토라)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옳고 그름에 대한 명령 및 기준을 통해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기를 옳은 것은 결국 하나인데,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옳고 그른 모든 것을 구분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사랑’인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하나님은 참이시고,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사랑은 참이다.

웹 2.0은 ‘연결’에 기반한 네트워크 구조가 인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특히 조직구성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발견하게 된 새로운 가능성을 뜻한다. 결국 새로운 효율성과 구조를 뜻하는 것이고, 이는 곧, 웹 마저도 사실은 가치중립적인 플랫폼이라는 것을 뜻한다. (이 부분을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얼마나 분권화되어 있는가 집중화되어 있는가, 얼마나 효율적인가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가치중립적인 플랫폼에 ‘사랑’을 담고 있느냐 이것이라는 이야기다.

기술의 발달과 네트워크 문화의 만연으로 우리는 새로운 조직, 캠페인, 비지니스 모델, 미디어를 발견하게 되었고, 앞으로 사회 곳곳에서 더 큰 변화를 보게 될 것이다. 혹자는 이런 변화를 좋아하고 혹자는 부담스러워한다. 그러면서 본인의 선호도와 철학을 증명하기 위해 ‘정의’라는 표현을 쉽게 남발한다.

내가 오늘 성경말씀을 통해서 배운 것은 하나다. 옳은 것은 사랑 뿐이다. 이를 나의 모든 생각의 bottomline으로 잡아보려고 한다.

조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관점

고전 물리학에서 빛은 입자(particle)였다. 그런데 어느날 빛이 파동(wave)의 성격 또한 가진 것도 발견이 되었다. 그 후로 빛은 보는 관점에 따라 입자가 되기도 하고 파동이 되기도 하는 이상한 놈이 되어버렸다.

20세기의 조직은 ‘입자’와 비슷하다. 정확한 경계가 있고 질량이 있고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그런 것. 기업, 정부, 재단, 교회 등 모든 조직은 그 조직이 하나의 쪼개질 수 없는 단위가 되어 건드리면 안되며 자체적으로 생명이 있었다.

21세기에 들어서 네트워크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웹 2.0″이라 불리우는 변화 안에서 조직의 성격이 변하기 시작했다. 조직은 더 이상 하나의 “단위”가 아니라, 구성원들이 어떠한 목적과 목표를 위해 움직이는 극히 유연하고 형체가 급변하는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버렸다. 다음 아고라, 위키피디어, 페이스북 등에서 끊임없이 목격되는, 어떤 목적에 의해 움직여지며 창발했다 사라지는 그 유기체를 말하는 것이다.

20세기의 산업주의적이고 효율성을 지향하던 입자 같은 조직이 21세기의 웹 2.0 시대의 ‘파동’과 같은 조직의 시대를 만나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인재의 고용은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야 할까? 소셜미디어마케팅에서 기업이 정말로 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 이베이나 지마켓 같은 구조에서 노조의 구성원은 누가 되는 것이 맞을까? 스마트워킹센터가 증가하는 지금 대기업의 부동산 놀이는 얼마나 규제되어야 할까? 5억명의 회원을 가진 페이스북이라는 서비스에게 회원의 국적이라는 것이 Farmville Level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까?

우리는 지금 확실히 무엇인가 변해버린 세상에 산다. 우리의 고민도 발맞추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며 저녁 먹기 전에 잠깐 잠이 들었었다.

태우는 친환경 냉방법 실험 중

내 방에는 에어컨이 없다. 어제 30도가 한참 넘었는데 거기다가 데스크탑에 22인치 모니터를 하루 종일 켜놓고 작업을 해야 해서 더워서 죽을 뻔하다가, 최근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찾아본 “친환경적 라이프스타일” 리서치를 하다가, 그나마 쉽게 할 수 있는 방 시원하게 하기 방법을 찾아봤다. 사실 친환경 보다는 어쩔 수 없이 “구린 방법”인데 상당히 효과가 있었다.

1) 시원한 대야물에 발 담그기 (책상 밑에 수건 깔아놓고 배치)
2) 냉동실에서 아이스팩들 꺼내 모아 선풍기 바람 그 앞으로 쏘기 (생각만큼 바람이 아주 시원하지는 않음)
3) 실외온도가 실내보다 높은 오전/오후에는 창문/베란다문 닫기
4) 실외온도가 실외보다 낮은 밤/새벽에는 창문/베란다문 열기

스스로 느끼기에 정말 시원해지는 데까지는 대략 5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이렇게 해본 결과, 실외온도가 33도인가까지 갔었는데도, 끝에 가서는 엄청 시원했다. 특히, 나중에는 아이스팩을 대야에 넣었는데, 이게 완전 대박이었다. 마치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군 것처럼!

이 방법을 “친환경적”이라고 부르기에는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TreeHugger 등에서 나누고 있는 방법 치고는 상당히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조금 번거롭지만, 물건들을 들고 부엌을 들락날락 하는 사이에 운동도 되는데, 이 주기가 대략 1-1.5시간 정도였으니, 컴퓨터 앞에서 작업만 하던 나에게 오히려 운동도 되고 모니터에서 눈을 떼는 충분한 휴식 시간도 될 수 있었다.

앞으로 이런 시도를 계속 늘려서 많이 공유할 계획이다. 기업들에서도 충분히 한번 활용해볼만한 방법인 것 같다. 직원들의 육체, 정신 건강에도 좋고 전기비도 아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