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09년 새해입니다. (물론 1월1일에도 했었지만, 한 번 더 ㅋㅋ)

모두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미디어와 (기독교) 영성과 도시

(매주 일요일은 기독교인인 제게 많은 생각과 반성과 점검의 날입니다. 태우’s log가 개인적인 공간인만큼 일요일마다 종종 개인적인 기독교 신앙을 나누는 글을 태우’s log에 올릴 계획입니다. 이 곳의 내용은 지극히 사적인 내용도 있으니 불편하신 분들은 언제든지 건너뛰어 주시기 바랍니다 ^^)

아주 아주 아주 오랫동안 나의 머리를 지배해온 주제다. 미디어, 더 쉽게 풀어 말해서 “매체”라는 것은 채널의 양쪽에 존재하고 있는 어떤 종류의 “커뮤니케이터”를 염두하고 이뤄지는데, 여기서 그 커뮤니케이터는 분명 “존재”해야 하며 상대방에게 어떤 방식을 통해서 “인식”되어져야 하며, 그런 다음에는 끊임없는 “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기독교 영성의 핵심은 바로 “예배”다. (지금 이 글이 “예배자의 독백”이라는 카테고리에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배란 인간이 전지전능한 신을 인식하고 그의 가치에 대한 느낌을 겸손하고 간절히 반응하는 것을 뜻한다. 예배는 다양한 장소 (예배당 등)와 다양한 형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며, 예배의 핵심에 남는 것은 오로지 “신령과 진정” 뿐이다.

내가 태우’s log에 글을 쓰고 올리면 이 사이트를 방문하는 사람에게, 메일로 구독하는 사람에게, RSS를 통해 구독하는 사람에게 그 글은 전달되며, 이 글들을 읽는 사람들은 “김태우”라는 사람의 머리 속에 들어있는 생각과 그의 말투와 목소리와 기분을 추측해보고 스스로 “느낀다”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런 면에서 블로그를 사람들이 개인 미디어로 부르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말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매개체 채널이기 때문이다.

유럽에 있는 동안에 욥기를 읽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 욥의 가장 큰 문제는 아무리 불러도 묵묵부답인 하나님이었다. 그동안 그렇게 선하심으로 자신의 삶을 다스렸던 그 전능자가 갑자기 왜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이 이해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한 대답은 언제나 들을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비해 하나님의 대답은 간단했다. “너, 내가 누군줄 알고 그러는 거야?” 욥은 그 위엄 앞에서 바로 수그러들고 회개한다.

하나님과 커뮤니케이션 한다는 것. 우리의 영적인 미디어 채널은 도대체 무엇일까? 과연 우리는 교회에서만, 찬양을 부를 때만, 무언가 신령한 은사를 받은 이들이 “음성을 들었고 비전을 보았어요”라고 할 때에만 커뮤니케이션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일까?

미디어가 우리의 삶의 지배하는 영역은 날로 커지고 있다. 서울에 살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디어”를 몇 시간 이상을 거치지 않고 갈 수 있는 가능성을 매우 적다. 모든 것이 미디어로 의미를 확장해나가고 있으며 미디어를 통해서 흘러다니는 것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이제는 의미와 사람과 관계과 사랑이 흘러다닌다. 그 속에서는 우리는 모두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그런 의미에는 내가 만난 미디어 학자 중에서 가장 성경적인 학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맥루한이다.

미디어는 새 선교지다. 땅밟기라는 행위가 물리적인 영역에 대한 승리를 선포하는 것이라면 미디어에서도 같은 종류의 선포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매트릭스와 같은 세상이 실제로 왔다고 가정해보자.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예배라는 것은 두뇌에서 일어나는 전기-화학 작용 이상의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우리가 핸드폰을 통해 주고 받는 문자 속에서도 엄청난 영적 전쟁이 일어나고는 있지 않을까?

미디어는 우리가 과거에 알아오던 영성의 폭을 더 확장할 수 있는 곳이자 새로운 “도시”다. 이곳은 우리의 선교지이자 사람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공중의 세력들과의 전쟁터이다. 그래서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를 더 빨리 이해해야 하고 받아들어야 한다. “기독교 2.0″이라는 것은 결국 예배라는 같은 핵심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세상은 넓고

세상에는 내가 모르던 일들이 참 많다. 유럽에 온지 벌써 3주인데, 그 사이에 시야가 넓어질 일들이 여럿 있었다.

1. 세상에서 가장 큰 이통사 3사는 차이나 텔레콤 (China Telecom, 가입자 한 5억명 정도 예상), 보다폰 (Vodafone, 가입자 3억명), 텔레포니카 (Telefonica, 가입자 2억 4천명)이다. 차이나 텔레콤의 경우를 제외하고 나머지들은 기본적으로 수십개의 나라에 걸쳐서 오퍼레이션을 진행한다. 재미있는 것은 보다폰과 텔레포니카가 작년 봄에 중국에 있는 여러 이통사에 투자를 시작했다는 것.

2. 운이 좋게도 오바마의 취임식 시간에 런던의 유명한 광장인 트라팔가 광장에 있을 기회가 있었다. (한국으로 따지면 시청앞광장과 같은 곳) 신기한 것은 영국 사람들이 오바마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다른 나라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미국 국기를 들고 흔들고, 서로 껴안고, 환호성을 지르고, 기립 박수를 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영국 친구들에게 물어봤는데 그동안 영국 사람들이 부시를 너무나 미워한 결과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그냥 영국 사람들이 8년동안 부시한테 괴롭힘 당한 것도 너무나 지겹지만, 역사적으로 형제애를 느껴온 미국 사람들이 불쌍해서도 그렇다고. 오바마가 가져올 “Change”에 대한 기대가 정말로 높아 보였다. 다음 동영상은 현장에서 찍은 짤방.


A scene at Trafalgar Square after Obama’s Inauguration from Danny Kim on Vimeo.

3. 무너지고 있는 뉴욕타임즈가 라틴 아메리카의 거부에게 손을 내민다. 카를로스 슬림은 2008년 빌 게이츠를 제치고 워렌 버펫을 잇는 세계 제2의 부자다. 그가 뉴욕 타임즈 구제에 나섰다. 2.5억 달러 (요즘 환율로는 대략 3300억원 정도)를 대주고 긴급 수혈을 시작한 것이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큰 의미있는 일이다. 하나는 무너져 가는 신문계의 안타까운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뉴욕 타임즈와 같은 미국의 자부심이, “하찮은 나라”인 멕시코의 재벌에게 손을 내민다는 사실이다. 물론 미국 미디어 업계에는 호주의 루퍼트 머독과 같은 해외의 큰 손들이 자리잡고 있지만, 머독의 경우 호주-영국-미국으로 이어지는 백인-영문권이라는 틀을 뛰어 넘지 않았다. 미국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멕시코 사람들을 엄청 무시하는데, 그런 나라의 세계 최고의 갑부에 의해서 미국의 간판 신문이 응급처치를 받고 있는 것이다.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이런 표현은 조금 민감할 수 있으나;;;) 한국의 최대 미디어 기업들이 망해가는데, 빚을 갚기 위해 베트남이나 파키스탄 재벌에게 수혈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지분도 엄청 넘어갈 것이고.

4. 얼마 전에 이런 일들이 모두 신기해서 세계 인구 현황을 보았는데, 나라별로 순서가 중국(13억)-인도(11억)-미국(3억)-인도네시아(2.2억)-브라질(1.9억)-파키스탄(1.6억)-방글라데시(1.6억)-나이지리아(1.5억)-러시아(1.4억)-일본(1.2억)이었다. 이 중에서 우리가 “잘 사는 나라”라고 부를 수 있는 나라는 사실 미국과 일본 둘이다. 시장으로 본다면 30억이 넘는 시장들인데, 왜 생각을 굳이 못했을까?

5. 자연스레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게 된다. 우리는, 특히 나는 얼마나 “국제적”이 되어야 하는가? 인터넷은 세상을 평평하게 만든 것이 사실이지만, 그만큼 로컬의 성격 역시 많이 바꾸어 놓았다. (궁금하신 분은 ‘미코노미’를 참조하시길 ^^) 한국은 참 독특한 것이, 외국으로 나가도 잘 안 될 때가 많지만 외국에서 들어와도 잘 안 된다. 그만큼 우리만의 응집력과 개성이 강하다고 말해야할까? 문화적,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굳이 국제화가 필요하지는 않다. 특히 국제화가 “미국화”로 오역된다면 말이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보았을 때는 여기에 관한 필요는 충분히 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 역으로, 특히 거대 자본을 가지고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잠시 잡생각들이 들어서 잠시 정리를 하려고 오랜만에 글을 남긴다.

조만간 한국으로 돌아간다. 설기간에는 떡국 실컷 먹어야지.

태우’s log 개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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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마다  모두 새해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학원다니고 헬스 끊고 하지만, 나는 한가지 하는 게 있는데 내 블로그들을 두루두루 돌아다니면서 성형수술을 시켜주는 것이다. 단순히 이쁘게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때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의 목적에 맞추어 어떠한 정보를 어떻게 프리젠트할 것인가에 대해서 스스로 고민하며 여기저기 망치질을 한다.

내가 직/간접적적으로 운영하는 블로그는 대략 10개 정도 된다. 그것을 하나하나 다 한다는 것을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일 때가 많다. 여러 블로그를 한 곳에서 관리할 수 있는 대시보드가 있었으면 좋겠다.

태우’s log가 작년 3월 Web 2.0 and Beyond (지금은 여러모로 복구가 많이 어려워져서 일단은 WayBack Machine에서 찾아봐야 하는 상태 ㅜ) 에서 Network Extrapolation으로 업그레이도 되면서부터 사실은 나의 블로링 커리어(?)는 조금 애매해졌다. 정체성을 파악하기가 어렵다고나 할까. 하여튼, 그 중에서 이 블로그는 내가 세상을 둘러보면서 생각나는 그림들을 정리하는 곳이 되고 싶다. 디자인도 중요하고 기술도 중요하고 사람도 중요하고 철학도 중요하고 비지니스도 중요하다. 내가 만나는 이러한 다양한 접점들이 모두 어딘가로 가고 있는 끊임없이 고민해보고 싶다.

이것저것 만지다 보니 자꾸 워드프레스 코드도 만지게 된다. 아주 가볍게지만 오랜만에 코딩을 하니 참 즐겁다. 글쓰는 것과 말하는 것과 코딩하는 것과 노래하는 것과 노래를 쓰는 것과 사진을 찍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즐거운 창작활동이냐고 한다면 5년 후에 다시 물어봐주세요라고 답을 해야할까? ^^

참고로 얼마 전에 트위터를 시작했다. 아마 미투데이는 한국에 계신 분들과, 트위터는 전세계에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 채널로 사용될 것 같다. 블로그와 블로거와 정체성이라는 주제는 아마 2009년도 내내 내 머리를 맴돌 것 같다. :)

여기저기 산발되어 있는 김태우의 글 한번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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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의 저자 파울로 코엘료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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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일이 있어서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유럽 각지에 흩어져 있는 여러 사람들과 연락을 하며 이쪽 바닥의 문화와 시장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는 중이다.

신기한 일이다. 지난 번 파리에 왔을 때에는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아, 평생 파리에 언제 또 돌아오려나’ 했는데, 불과 3주만에 다시 파리에 돌아와 버젓이 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 번에 르 웹(Le Web) 컨퍼런스에서 정말로 재미있고 좋은 일들이 많았다.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이 만나고, 즐거운 대화도 나누고, 많이 배우고, 파리 구경도 실컷하다 갔는데, 그 중에서도 잊지 못할 일이 있었으니 이는 바로 그 유명한 ‘연금술사’의 저자 파울로 코엘료와의 만남이었다.

코엘료는 르 웹에 연사로 참석했다. 굉장히 궁금했다. 도대체 코엘료와 같은 인사가 인터넷/웹 컨퍼런스에 오는 것일까? 르웹 2008 주제가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이란 이런 것이다 또는 ‘연결성’이란 주제에 평소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그이기 때문에 웹의 본질에 대해서 논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가 스테이지에 올라서 들려준 이야기들은 “웹 2.0 빠”인 나같은 사람에게는 하늘의 계시였다. 그는 2000명에 달하는 청중 앞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 인터넷 시대에 저작권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 책을 쓰는 그대로 인터넷에 공개해라. 더 많이 팔린다.
  • 내 블로그를 통해서 나의 모습을 알리기 시작함으로서 나는 실제적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 나는 하루에 독자들에게서 오는 메일을 평균 400건을 읽으며 그 중 상당 부분 답장을 쓴다.
  •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은 오히려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책을 쓰는 것이 작품의 가치를 떨어뜨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써 본 책 중에서 가장 지루했던 책은 바로 내가 호숫가 산장에 들어가서 혼자 쓴 책이었다. 반대로 가장 재미있고 깊이가 있는 책들은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쓴 책이다.
  • 현재 저작권법은 아직도 구시대의 모습대로 있다. 무엇인가 변해야 한다.

루익(Loic)과 그의 대화가 끝나고 그가 스테이지에서 내려오자 수없이 많은 이들이 그에게 다가갔다. 2007년에 환갑을 맞은 그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연금술사’와 같은 추앙을 받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지금까지 5억부에 이르는 책이 팔리고 매번 60개 언어로 번역되어 나가는 그런 “지존급 인물”인 그가 자기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었다. 정말로 보기 드물게 접근성이 높았다. 결국 그는 스테이지에서 내려와 두시간 정도를 사람들과 대화하는데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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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그렇게 그를 괴롭힌 사람 중 하나였다. 모, 그에게 다가간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우선 (참으로 교만하게도) 수백만의 한국인들에게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준 그에게 한국을 대표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참고로 코엘료는 한국의 미디어와는 거의 접촉이 전무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에 가수 루시드 폴과의 만남 정도가 전부라고 할까?) 그리고 내가 기독교인으로서 그의 철학 세계에 궁금해하던 것에 대한 질문을 몇 개 던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으며 (그의 구도자로서의 접근 방식과 전능자의 섭리에 대한 부분은 많이 동의하지만 죄와 보혈의 개념이 빠져있는 것은 많이 아쉽다), 또한 “블로거”로서 그를 만나본다는 것이 영광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는 참 멋있었다. 귀찮게구는 나와도 열심히 대화하고, 책도 싸인해주고, 같이 사진도 찍어주고, 자기 조수의 연락처까지도 직접 주는 센스를 발휘했다. 상대방의 말에 매우 진지했으며 단 한번도 귀찮음을 내색하지 않았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연결성. 신앙. 뉴에이지. 범신론. 신의 사랑. 보혈. 웹 2.0. 사람. 대화. 나눔. 비움. 내려놓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 결국 모든 사람은 구도자다. 어떤 길을 갈 것인지는 각자 선택해야하지 않을까? 나는 개인적으로는 연금술사 책에 있었던 여정보다는 천로역정에 있던 여정을 걷고 싶다. 혹자는 물론 이 두 길을 같은 것이라고도 하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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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