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태우 on 2009년 4월 23일
경제 전공을 하지 않았던 나는 때로는 경제 전문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다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느껴지는 것이 있는데, 극도의 경쟁과 파이 나눠먹기, 그리고 제한된 자원을 마지막 한방울까지 뽑아먹는 전략을 추구하는 방식은 새로운 경제 체제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관계가 거래비용보다, 창의성이 생산성과 효율성보다, 사람이 제품보다 중요한 생태계에서는 분명히 과거의 체계분석적인 전략수립의 한계가 확연하게 들어날 것이다. 거대한 규모의 상징성에만 모든 초점을 두고 움직이다보면 큰 코가 다치는 일이 있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관계를 맺고 연결시킬 줄 아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소셜 미디어 마케팅, 오바마의 승리, 미네르바의 무죄석방, 이베이와 아마존의 부상, 월스트리트와 신문산업의 붕괴, 에픽하이의 인기몰이. 이 모든 것들은 어찌보면 변화하는 세상에서 공학적으로 고도화되었던 산업자본주의의 종말을 지시하고 있으며 새로운 경제, 즉 연결 경제의 탄생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연결 경제에서 성장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일정 성장 후에 산업자본주의 전략으로 회향해야할 것 같은 유혹이다. 스스로 단기적인 성과에 눈이 멀어 더 큰 성장 가능성을 포기하게 되는 것인데, 우리는 사회적인 압력이나 개인적인 욕심 (말 그대로 “greed”) 때문에 대부분 그 턱을 뛰어 넘지 못하고 자신에게 가장 큰 성장을 가져왔던 그 원동력을 그 자리에서 발로 차버린다. 연결 경제의 동력을 규모로 가는 지름길로만 생각하는 근시안적인 믿음에서 오는 실수라고 생각한다.
작지만 필요에 따라서 적시에 연결될 수 있는 느슨한 구조와 열린 마인드가 필요하다. 연결이라는 본질을 경제활동과 전략의 중심에 놓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왜 통섭이라는 단어가, 디자인이라는 요소가, 대화라는 교양이, 스몰 자이언츠라는 구조가 화자가 되고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많은 이들은 이러한 선택을 철학의 선택이라고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사실은 전략의 선택이다. 잘 했을 경우 엄청난 가치를 가져다 주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이런 것에 대해서 맨날 말로만 하다 보니까 그게 맘에 안 들어 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셨다. 현업과는 관련없는 얘기다. 현실을 무시하지 말라. 김태우 너나 잘해라.
그래서 잘해보려고 한다. 말에서 행동으로 옮긴다. 조만간 “짠” 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시라. ^^
Posted by 태우 on 2009년 4월 12일
(매주 일요일은 기독교인인 제게 많은 생각과 반성과 점검의 날입니다. 태우’s log가 개인적인 공간인만큼 일요일마다 종종 개인적인 기독교 신앙을 나누는 글을 태우’s log에 올릴 계획입니다. 이 곳의 내용은 지극히 사적인 내용도 있으니 불편하신 분들은 언제든지 건너뛰어 주시기 바랍니다 ^^)
올해 고난주간은 유난히 힘들었었다. 일이 힘들고 몸이 힘든 것보다도, 마음이 많이 무거웠던 한 주였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 “고난”의 무게가 나의 영혼을 짓눌렀었기 때문이다.
나 때문이라는 생각. 흠없는 어린 양이 나 때문에 그런 고난을 당해야 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나 괴로웠었다. 나의 모든 신음과 눈물과 역경과 죄와 괴로움과 한탄과 억울함과 교만한 이 모든 것들에서부터 나를 자유케 하시려고 대신 십자가의 형벌을 감당했다는 것이, 그리고 나는 아직도 온전치 못해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마음에 오늘도 못을 박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신경 마디마디를 건드렸었다. 내가 도망간 베드로고 내가 가롯 유다고 내가 빌라도고 내가 성난 군중이고 내가 헤롯이고 내가 대제사장이다.
연례행사처럼 패션 오프 크라이스트를 보면서 그의 고통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올해는 분명 달랐다. 더 이상 그의 살이 채찍에 뜯겨 나가고 대못이 그의 손목과 발목을 뚫고 지나가는 장면에서만 터져 올라오는 울음이 아니었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아픈 가슴에 심장마비가 걸릴 것 같았다. 그 모든 것이, 그 모든 것이 그의 사랑이 아니었으면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며, 그 이유는 나 때문이라는 마음에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통이 무엇인지, 옳지 못한 것들의 대가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더 마음 속 깊이 사무치면서 부인할 수 없게 된다.
그랬던만큼 내일 부활절이 기대된다. 승리의 기쁨이 가슴 터지게 뿜어져 나오기를 원한다. 아팠던만큼 더 큰 기쁨이 되기를 원한다. 내가 싸울 필요가 없었던 이 승리, 이제는 만끽하라고 나에게 주어졌다. 믿음으로 취하면 되는 것이다.
그만큼 이제 나도 더욱 담대하게 십자가의 길을 걷길 원한다. “세상이 나를 미워했듯이 너희도 미워하리라” 강하고 담대하길 원한다.
예수님은 살아계십니다! 예수님은 주님이십니다!
He is risen! He’s alive! He reigns forever more!
할렐루야!
Posted by 태우 on 2009년 4월 1일

유쾌한 만우절을 선사해준 파란의 짓짓짓.
아 옛날이여.
즐거운 만우절 보내고들 계신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