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식 사고 방식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게 자꾸 눈에 들어온다. 네트워크식 사고와 기존 사고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과거에는 내가 모든 것을 다 해야 했다면 (그렇기 때문에 규모가 중요했다) 네트워크 씽킹에서는 무엇인가 이미 잘 하는 남을 찾아내고 함께 간다는 것이다.
지금 나의 네트워크식 사고 방식은 크게 세 군데에서 그 뿌리를 찾아볼 수 있다. 하나는 시맨틱웹에 대한 열정에서였다. 어느 한 점도 중심이 되지 않는 완벽하게 분산화된 데이터베이스를 온라인상에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게 느껴졌다. 시맨틱웹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2002년 전보다 몇 년 전에는 교수님과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는데, 바로 “Ad Hoc Network”의 프로토콜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Ad Hoc 네트워크의 특성은 네트워크에서 패킷이 라우팅되기 위해서 하나의 “전지전능한” 노드에서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노드들 하나 하나가 동적으로 그때 그때 패킷에 대한 정보를 기억하며 라우팅 경로를 구성해 간다는 것이었다. 노드가 서로를 믿지 못하면 절대로 작동할 수 없는 그런 성격의 프로토콜이었다. 마지막으로는 웹서비스에 대해서 깊이 공부하다가 발견한 CBD (Component-Based Development) 방법론이었다. 이미 구현되어 있는 전문화된 비지니스 로직을 불러다가 내 서비스에 접목시킬 수 있도록 조금 더 분산화되고 단위화된 시스템을 구성한 후에 이것을 이어서 큰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다. 레고 생각을 하면 조금 더 이해가 쉽지 않을까 한다.
분명히 공돌이적인 접근방식에서 시작한 이 생각의 틀이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음을 보고 깜짝 놀란다. 공돌이들이 만들어 놓은 인터넷이, 그리고 웹이 그렇게까지 세상을 바꾼 것이다.
네트워크가 발전함에 따라 클라우드 컴퓨팅의 파워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는다. 데스크탑의 컴퓨팅 파워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컴퓨팅이 서버 단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낮은 사양의 디바이스도 네트워크와 배터리만 빵빵하면 “충분한” 세상에 왔다. 넷북을 보고 아이폰을 보고 Palm Pre를 보자. 서버에 대한 지출이 끊임없이 늘어나기 때문에 이런 글도 나오고, Sun은 그린 컴퓨팅에 올인한지 오래다. Open API 역시 계속해서 성장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은 이미 누군가가 만들어 놓았을 가능성이 높고, 나는 거기에 연결만 잘 하면 되는 것이다.
여기에 ‘평등’이라는 이상적인 가치를 담을 자신은 없다. 네트워크 구조가 새롭게 탄생해도 결국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극히 소수만 네트워크의 혜택을 크게 누리고, 플랫폼을 잠식한 구글은 반독점법을 만나고 네이버는 기존 언론 세력을 대신하는 신흥세력이라는 구도만 펼쳐질 뿐이니까.
하지만 한가지, 세상은 크게 급변하고 흔들리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갑-을-병-정 체제가 최소한 갑-을1-을2-을3 이런 식으로도 비지니스가 가능한 세상은 오고 있으니. 컴포넌트의 구성과 전문성에 따라서 을3이 갑이 되고 을2가 빠지는 일도 빈번하다. PUSH 방식은 더 이상 예전처럼 먹히지 않는다. 고비용 저효율성이라는 결과가 불보듯 뻔할 때가 많으니.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왜 모두 소셜 미디어 마케팅을 그리 열심히 외쳐대는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네트워크 씽킹에 있어서 critical한 성공 요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연결-이음-링크-connect이다. 연결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고, 없다면 만들어야 한다. 웹표준이 그래서 중요하고 합의가 그래서 중요하고 Open API가 그래서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는데, 저 쪽이 나보다 이 부분에서 훌륭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신뢰다. 내가 더 잘 할 수 있을 자신이 없다면 저 쪽과 협업해야 하고 같이 잘 되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협업해서 만들 영역은 누군가의 밥그릇을 훔쳐 오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구경한 적 없는 새로운 종류의 밥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잘 할 수 있는 남들을 만나 신뢰해야 하고 그 다음에 연결해야 한다.
2004년에 태우’s log를 시작하면서도, 웹 2.0을 접하면서도, 블로거로 살아가면서도 이 구조에 대한 믿음은 변함이 없다. 물론 이것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더 나은 무언가를 위한 훌륭한 프레임워크가 될 수는 있다고 믿는다. 믿음이 없다 하더라도, 이를 하나의 훌륭한 전략적 기틀이라고는 추천하고 싶다. 최소한 이미 있던 것들은 완전한 포화상태에 있으니까.
밖에는 비가 엄청 오는데 내 머리도 비가 쏟아지듯 많은 생각이 지나간다. 다 정리하고 싶어서 고향같은 내 블로그로 다시 돌아왔다. 물론 이 글은 그런 의미에서 나의 제 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고 있다. ^^
1. 내가 쓴 책 읽어보기
오랜만에 다시 미코노미 책을 들고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처음 쓰기 시작했던 것이 2006년 초였으니까 벌써 3년이 넘었구나. 읽으면서 얼마나 얼굴이 빨개졌는지 모른다. 에구 부끄러워라. 다시 한번 책을 쓸 기회가 있다면 더 잘해보고 싶다. 사람의 욕심이란 정말 끝이 없는 것이구나.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던 것은, 나는 얼마 전부터 새로 가지게 된 생각이었다고 믿는 것들이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내 머리에 박혀져 있구나 라는 깨닫는 순간들이었다. 지금 나의 모든 활동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벌써 오랜 세월을 두고 내가 쌓아온 철학과 생각의 틀에서부터 왔구나. 조금은 겸허해지는 순간이었다.
2. 기업과 사람
사실 몇 일 전에 쓴 블로그다운 기업블로그라는 이 글을 올려 놓고 살짝 고민이 되었다. 왠지 악플이 많이 달릴 것 같아서. 그런데 의외로 아니었다. (이 블로그가 이제 인기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ㅋㅋ 하지만, 어느 정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 본 블로거들은 아마 악플에 대한 심한 트라우마 때문에 행동이 얼마나 제약적이고 부자연스러워지는지 알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내용에 대해 시비를 걸 사람이 많을 줄 알았다. 사람과 기업을 그렇게까지 깊이 연관시키는 것에 대해서 세상 모르고 극히 비현실적인 접근방식이라고 할 것 같아서. 그런데 어제 문득 든 생각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업이나 어떤 종류의 “공식단체”를 법적으로 등록을 할 때는 우리는 이를 “법인”이라고 부르는데, 법인에서 ‘인’은 사람 ‘인’이다. (법인: 法人) 법에서는 법인 등록될만한 자격이 있는 조직, 특히 그 중에서도 기업을 이미 하나의 인격체로 본다는 철학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회계사분에게서 들었다.
기업은 본래 하나의 인격체 같은 곳이다. 단순히 노동자로 노동을 지급하고 돈을 돌려받는 곳이 아니라, 개인과 유기적으로 맞아 돌아가며 공동체, 그리고 거기에 속한 개인에게 살맛나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과연 우리 중 얼마나 그런 시선으로 우리가 속한 곳을 바라보고 있을까?
3. 상식과 비상식과 천재와 바보
어렸을 때부터 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얘기를 들으며 자랐다. 요즘에 조금 철이 들었는지 무슨 뜻인지 이제야 조금 알겠다. 세상이 만들어 준 정형화된 공식을 잘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세상에 쉽게 순응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비상식적인 사람들이다. 세상과 무엇인가 핀트가 안 맞는 이 차이점 때문에 대성할 수도 있고 완전 쪽박 찰 수도 있다.
문화적 순응도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강한 한국에서는 천재로 살기도 바보로 살기도 쉽지 않다. 다르게 살아도 내가 정해놓은 정의 안에서 행복하면 되는 것 아닌가? 남들과 다른 무엇인가를 시도하고 그것이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서 손가락질하지 않고도 살 수 있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이 점점 더 많이 든다. 조금만 더 생각을 하면 남들이 1000만원 들여서 할 것을 100만원에 할 수도 있다. 특히 이런 것들이 실제적으로 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기업의 중심에 사람이 있다는 점을 기억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매일 매일 몸소 체험하면서 소스라치게 놀란다.
세상에서 많이 이용되는 길로 꼭 가지 않아도 길은 참 많이 있다. 그리고 그 “다른” 길 중에는 실제로 탁월한 길들이 참 많이 있다. 그 길로 가는 것에 대한 근거없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복있을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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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니까 딴 것보다도 은혜를 구한다. 단비라는 것. 단비같은 은혜. 참으로 날 깊이 충족시켜주는 것. 남은 주말도 모두 행복하시기를!
그런데 세상이 난리가 났다. 다음은 트위터 사용자들이 지메일이 안 돼서 패닉하는 모습의 캡쳐샷:
구글과 트위터. 트위터와 구글. 둘이 죽이 참 잘 맞는다. 물론 구글이 트위터를 인수한다면, 아마도 트위터는 전과 같지 않겠지.
이슈라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다. 어떤 것들은 지메일과 같이 직접적으로 자신에게 영향을 미쳐서 그런 것도 있지만 어떤 것들은 안주거리로 이슈가 되기도 한다. 소셜 마케터들이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안주거리로 이슈에 오른 뒤 무언가 “효과”를 얻어보려고 하는 것. 주목을 받으면 모하나. 그 주목이 때로는 당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데.
사실 소셜 미디어를 내가 사랑하는 이유는 투명성에 있다. 스패머들이 득실대고 갖가지 기교를 부려서 순식간에 순위에 오르고 사라질 수도 있는 곳이지만, 훌륭하고 성실하고 참실한 소셜 미디어 컨텐츠는 반드시, 반드시 인정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성실하고 진실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지 않고도 인기몰이를 하고 사라지는 XX들이 종종 우리를 짜증나게 하기는 하지만.
여기서 나의 음모론: 지금 구글의 장애는 고의적이다. 일부러 삐걱대서 구글이 얼마나 필수적이며 가치있는 존재인지를 세상에 알려주기 위한 작은 장난. 본래 1등은 결국 두려움과 불안을 빌미로 사업을 할 때 가장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니까. (물론 농담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