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에 대한 성경적 원칙 #2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 로마서 13:1-10

지난 번 글에서 ‘웹 2.0 시대’ 또는 ‘네트워크 시대’에 존재하는 새로운 종류의 조직이라는 것에 대해서 고민해보았다. 그것도 동시에 내 마음 속에 반복적으로 드는 생각이 과연 이러한 네트워크형태의 조직에서 우리는 권위를 어떻게 정의해야하는가 였다. (참조: ‘권위’에 대한 성경적 원칙)

첫째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권위’와 ‘권위주의’의 차이다. 나와 같은 젊은 사람들이 가지기 쉬운 막연한 반감의 대상은 ‘권위’가 아니라 ‘권위주의’여야 한다. 왜냐하면 ‘권위’라는 것은 여러 사람이 공존하는 한 늘 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위의 성경말씀을 보면 모든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니 우리 모두는 일단 순종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 위 말씀을 쓴 사도 바울(바올로, Paul)은 당대 최고의 제국이자 권력이었던 로마 제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위 편지를 보냈다. 나는 성경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를 나의 기본적인 권위에 대한 원칙으로 삶으려고 한다. 많은 곳에서 사회개혁가로 추앙받고 있는 예수님도 사실은 마지막까지 권위에 복종하셨기 때문에 그가 결국에는 모든 권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빌립보서 2장 참조) 추가적으로, 예수님의 더 큰 본질 (삼위일체, 하나님의 독생자, 창조주, 구세주, 부활자, 100% 신성과 100% 인성 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사회개혁가 또는 종교가로만 보는 관점은 마치 ‘한국은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이고 한국은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별로 알 필요가 없다’처럼 단편적인 그림만 보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주의하면서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아직 나도 젊어서인지 “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그리고 그런 세상으로 현 세상을 바꾸고 싶은 염원이 매우 강하다. 따라서 자연스레, 우리가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한다면 하지만 위처럼 권위에 순종해야만 한다면 이 세상에 만연하고 있는 이 옳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도 쉬쉬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라는 매우 불편한 질문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자연스레 드는 질문은 “그렇다면, 과연 옳은 것은 무엇인가”이다. 구약시대에는 아직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가 매우 낮았었기 때문에 십계명과 그 외 율법(토라)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옳고 그름에 대한 명령 및 기준을 통해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기를 옳은 것은 결국 하나인데,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옳고 그른 모든 것을 구분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사랑’인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하나님은 참이시고,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사랑은 참이다.

웹 2.0은 ‘연결’에 기반한 네트워크 구조가 인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특히 조직구성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발견하게 된 새로운 가능성을 뜻한다. 결국 새로운 효율성과 구조를 뜻하는 것이고, 이는 곧, 웹 마저도 사실은 가치중립적인 플랫폼이라는 것을 뜻한다. (이 부분을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얼마나 분권화되어 있는가 집중화되어 있는가, 얼마나 효율적인가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가치중립적인 플랫폼에 ‘사랑’을 담고 있느냐 이것이라는 이야기다.

기술의 발달과 네트워크 문화의 만연으로 우리는 새로운 조직, 캠페인, 비지니스 모델, 미디어를 발견하게 되었고, 앞으로 사회 곳곳에서 더 큰 변화를 보게 될 것이다. 혹자는 이런 변화를 좋아하고 혹자는 부담스러워한다. 그러면서 본인의 선호도와 철학을 증명하기 위해 ‘정의’라는 표현을 쉽게 남발한다.

내가 오늘 성경말씀을 통해서 배운 것은 하나다. 옳은 것은 사랑 뿐이다. 이를 나의 모든 생각의 bottomline으로 잡아보려고 한다.

‘권위’에 대한 성경적 원칙 #2”에 대한 1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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