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에 대한 나의 기억

2001년 9월 11일의 기억은 (벌써) 9년이(나) 지난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다.

내가 당시 재학중이던 코넬대학교는 뉴욕주의 자그만한 도시인 이타카(Ithaca)라는 도시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뉴욕시에서 차로 4시간이 되지 못하는 가까운(?) 거리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뉴욕주의 여러 도시, 그 중에서도 특히 Long Island, Brooklyn, Queens, Manhattan, Staten Island 등 뉴욕 시내 또는 근교 출신이었다. 내가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은 대부분 한국/중국 2세 교포였는데, 유난히 뉴욕 출신들이 많았다.

당일 아침에 나는 이른 수업이 있어서 수업을 다녀온 후 잠시 눈을 붙였는데 갑자기 여기저기서 전화통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뉴욕 바로 옆에 있는 뉴저지 주에 있는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전화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통화의 대부분의 내용은 “태우야, xxx랑 연락되니? 얘가 어제 밤에 맨하튼 나갔는데 연락이 안 된다. 이를 어쩌지?”였다.

한 사촌 동생은 맨하튼 아래쪽인 NYU 재학 중이었고, Parsons에 다니면서 저 아래 쪽에서 지하철타고 등교하는 친구들도 여럿이었으며, 몇 명은 아예 월가에서 일하는 친구들이었다. 나도 놀란 마음에 여기저기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고, 아니나 다를까 연락이 되는 지인은 하나도 없었다.

아직 “시민 언론”이라 부를만큼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어서 올리거나 하지도 못했고, 이 당시는 flickr나 youtube도 아직 태어나기 전이었으므로, 유일한 소식통은 CNN, NBC, Fox와 같은 TV뉴스채널들과 이들의 웹사이트였다.

더 이야기를 읽고 찾아보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볼 수록 그 사태의 무게가 나의 가슴을 짖이겼고 이해할 수 없는 그 충격에 전교생이 학교 마당으로 나와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던 기억만 난다. 캠퍼스 어디를 가더라도 웃는 사람은 볼 수 없었고, 수업은 취소되고 사람들은 정신 나간듯이 캠퍼스를 헤집고 다녔다. 이런 증상은 그 후 몇 일동안 계속되어 갔다. 교수님들도 수업시간마다 한 5분은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라는 설교와 함께 수업을 시작했다.

모든 사태가 그렇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한 두 명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친구 하나는 여름에 쌍둥이빌딩에서 인턴을 했었는데 자기와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연락이 되지 않아서 마음을 졸이고 있었는데, 다행히 그 층은 비행기가 부딪힌 곳보다 낮은 층이었고 다행히 일찍이 움직이게 되어서 몇 명은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다고 나중에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내 룸메이트의 외삼촌은 근처에서 일을 하는 의사였는데 쌍둥이빌딩에 불이 나는 걸 보고 동료 의사와 그걸 보러나갔다가 갑자기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달렸는데, 달리다 보니 옆에 같이 달리던 의사 동료가 없어져서 돌아보니까, 건물에서 날아온 파편에 맞아서 사망한 것을 보았다고 했다. 친한 친구 하나는 살짝 좀 떨어져 있었는데 베란다로 무슨 일인가 그 쪽을 바라보는 순간 빌딩이 무너지면서 일어난 먼지 폭풍이 자기에게로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걸 보고 “난 죽었구나” 했는데 다행히 베란다가 닫혀 있어서 살았다고 했다. 친구 하나는 Queens 사이드에서, 친척 하나는 New Jersey 사이드에서 두 건물이 시간차를 두고 무너지는 걸 목격했다고 한다. 한 친구는 같이 수업을 듣는 학우 하나가 갑자기 아버지에게 전화가 와서 이건 아버지 마지막 통화라고 사랑한다고 말을 하고 나서는 전화가 끊겼다고 한다.

이 날의 충격보다 더 무서운 것은 911사태 이후 미국사회에의 여파였다. 곳곳에서 테러리즘에 대한 민감한 움직임이 보였다. 우리 학교 같은 경우도 잔디에서 주인 없는 봉투가 하나라도 발견되면 탄저병 가방이다 폭탄이다 이러면서 전교생에게 주의를 내리는 공지가 돌았고, 가끔은 술취한 백인 남학생들이 길거리에서 아랍계 여학생들을 때리고 사라지는 hate crime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경제가 급격히 바닥을 치면서 친구들이 구직에 실패하기 시작하고, 나와 같은 유학생들은 더 이상 미국에 발을 붙이기가 곤란해졌다. 당시 졸업반이었던 친구들은 취업을 포기하고 대학원 진학을 노리기 시작했다. 항공편 보안검열이 30분에서 3시간으로 길어진 것도 이 때부터고, 공항을 들락날락하는 나같은 유학생들은 검사관에게 필요없는 기분 나쁜 인종차별을 받기도 했다. 괜히 길거리에서도 나를 “You North Koreans, get rid of the fxxxing nukes” 이러면서 놀리는 몰상식한 사람들도 늘어났다. (참고로 미국에는 남북한, 중국, 일본, 대만 사람들의 차이를 구분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깔렸다. 마치 우리가 헝가리, 루마니아, 오스트리아를, 또는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코스타리카를 비슷하게 보는 것처럼.)

전쟁, 제국주의. 이런 얘기는 아마 여기에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바쁘게 살아가는 와중에도, 그리고 9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9/11의 기억(어찌보면 악몽)은 어김없이 돌아온다.

오늘 이 글은 누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기보단 스스로에게 남기는 메모와 같은 글이다. 기술을 통한 극도의 낙관주의가 발전하고 인류의 가능성에 대해서 소망을 키워가는 지금도 우리는 변함없는 문제를 앞에 두고 있다: 전쟁, 기아, 죽음, 기후 등. 우리의 노력으로 과연 궁극적인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오늘도 내 머리를 맴돈다.

9/11에 대한 나의 기억”에 대한 2개의 생각

  1. 핑백: taewoo's me2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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