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우’s log가 10돌을 맞이했습니다.

2004년 9월 14일 이 블로그가 탄생했다. 아무런 목적도 목표도 없이 그냥 탄생했고 그렇게 10년이 흘러 내 인생은 참으로 많이 달라졌다.

지난 몇 년동안은 이렇게 블로그 생일이 되어서야 글을 남길 정도로 발길이 뜸한 곳이 되었지만 (5년차, 6년차, 9년차 기념글), 이 블로그가 내 인생에 가져다준 의미와 선물들은 내가 감히 받을 자격이 없었던 것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겠다.

우선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더 많은 것들을 배웠다. 커리어가 생겨나고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예상치 못했던 관심과 비판을 받았으며, 그때마다 나는 나의 인격을 혹독히 수양해야 하는 훈련을 받았다.

사람들은 보통 1년 동안 자기가 성취할 수 있는 일은 과대평가하지만, 10년동안 성취할 수 있는 일은 과소평가한다고 한다. 나도 10년을 돌아볼 때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지 그때 알았더라면 많은 부분들이 달라졌었을까?

앞으로의 10년을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된다는 생각이다. 지금부터 10년이 더 흘러 2024년 9월 14일에 이 블로그의 20번째 생일을 기념하게 되면서 지금보다는 더 더 더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찰 것으로 믿는다.

철없던 나를 예쁘게 봐주셨던 모든 분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철없는 나를 토닥토닥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함께 웹 2.0 시대와 블로거 시절을 겪었던 모든 분들에게 찬사를 드린다. 받은 게 많기에 앞으로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10년 전보다 한가지 달라진 점은, 내가 아무리 내 블로그라고 해도 쉽게 무엇을 말하기에는 말이라는 것이 상당히 무섭다는 것과 무게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세상에는 너무나 배울 점이 많은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모두 감사드립니다.

자 이제 또 한 걸음씩 걸어간다. 10년후의 새로운 모습을 상상해보면서. 김태우 화이팅.

영화 '소셜네트워크'를 보고

11/18 개봉일에 영화 소셜네트워크를 봤다. 많은 생각과 감정이 오고 갔고, (남들은 모르겠지만) 영화 후 나는 아주 큰 만족과 기쁨을 가지고 나왔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1. 추억: 하바드 대학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Mark Zuckerberg와 학교 분위기, 그의 친구들을 보면서, 하바드는 아니지만 아이비 리그 대학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나에게, 한국에 돌아와서부터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나의 학창시절의 기억이 우르르 몰려 돌아왔다. (술/마약/여자만 빼고) 나도 저렇게 살았으니.
2. 집중력과 열정: 나의 “웹 2.0 블로거” 시절이 기억 났다. 나는 분명 그 당시 무언가에 꽂혀 있었다. 직장인으로 살면서도 하루에 2-3시간씩만 자면서까지 학습하고 지식을 공유하고 사람들을 만나기에 바빴다. 감사한 일은 이 때의 추억은 지금도 아름다운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들고, 아마 평생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는 일이다.
3. 기회와 용기: 무엇에 꽂힌 사람은 실패에 대한 리스크와 비용을 계산을 하지 않는다. 계산할 시간에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하니까. Silicon Valley 문화가 그렇고 성공한 사람들의 문화가 그렇다. 그러다보니 순간적으로 너무나 답답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Sean Parker와 나는 겨우 한 살 차이인데, 나는 이미 너무 리스크를 계산하고 통제하(려)는데 인생의 중요한 자원을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분들은 아마 말하실게다. “그 모든 것들을 무시할 수는 없잖아. 결국 나중에는 계산하면서 산 사람이 더 행복하게 되어있어.” 잘은 모르겠지만, 이런 얘기해주시는 분들이 과연 더 행복할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특히, 그 “나중”이 언제라는 것에 대한 결정이 없다면. (참고로, 이런 면에서 나는 내가 기독교인인 것이 너무나 감사할 때가 많다. 나에게 그 나중은 죽음 이후이고 지금 현세에서의 모든 투자는 영생의 복으로 돌아오니까.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 로마서 8:18” )
4. 창의력과 자본: 순수예술가가 될 것이 아니라면, 창의력은 자본을 반드시 만나야 할 때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창의력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 뿐만 아니라 세상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줄 알고, 세상에 숨겨진 니즈를 찾아내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능력을 뜻한다. (안타깝게도) 자본주의사회에서 종종 자본은 힘과 영향력을 뜻한다. 창의적인 것, 즉 좋고 선한 것은 영향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은, 좋고 선한 것은 작고 영향력이 없을 때에만 아름답다는 착각의 만연이다.
5. 의미: Mark는 의미에 대한 이해가 강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파트너라면 그가 자신의 Best Friend든 Mentor든 그 순간에 김유신이 애마의 목을 베듯이 잘라버렸다. 페이스북의 “쿨”한 브랜드 이미지에 대한 그의 종교적 신념과도 같은 고집, 그리고 그 고집만이 Facebook을 Facebook 답게 만든다는 그의 또 하나의 고집은 5억명에게 새로운 의미를 전해주는 도구 (social utility)를 이 세상에 전해주었다.

그 외에는,
– 나는 이 영화를 한국의 모든 대학생들과 청년”실업자”들이 보았으면 좋겠다. 도전의식을 키우고 자괴감과 패배의식을 떨쳐 버리는 영화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 드라마 투성이인 이 영화는 사실적인 오류도 엄청 많다. 마치 한국에서 사극이 30% 시청률이 넘을 때마다 드라마속 역사성/사실성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듯이. 예를 들어, Mark가 이 모든 것을 시작한 이유로 나오는 Erica와는 사실 하바드 시절부터 오늘까지 지속되어온 연인관계라고 하고, 코카인 사건 때문에 Parker가 떠나게 된 것은 오히려 사건을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Mark의 결정이 아니라 VC측의 결정이라고 한다.
– ‘세븐’과 ‘파이트클럽’의 데이빗 핀처 감독에 대해서는 또 다시 여러 번 감탄했다. 사실 미국에서 그런 하바드나 Palo Alto 같은 환경에서 살아보지 않았다면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디테일을 모두 잡아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바드는 궁극적으로 도전적이고 열려있는 교육기관이라는 말도 안되는 아부를 던진 그의 타협에는 실망헀다. 만약에 진짜 그랬다면 Mark가 왜 캘리포니아로 갔겠나.)
등의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깊이 생각해보게 된 것은, 이 모든 것들이 일어나게 된 스피드였다. 일반적으로 어떤 큰 일을 이룬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오기까지는, 단순한 사건이 아닌 이상, 수십년이 걸린다. 그런데 겨우 25세의 친구가 전 세계 5억명을 정복한 이 모든 이야기를 다룬 시나리오가 나오고 영화가 제작되고 한국에 건너오기까지 불과 7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게 지금 세상이 흘러가는 속도다. 꾸준함과 말도 안 되게 빨리 흘러가는 이 둘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혼란에 빠지지 않고 우리의 자리를 지키면서 나를 찾아갈 수 있을까?

글 써놓고 보니, 2시간짜리 영화 하나 보면서 정말로 많은 생각이 들었었구나.

열정에 대하여

2010년 한 해동안 나의 생각과 마음을 가장 많이 잠식했던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가”였다. 사람들은 “왜” 움직일까? 그랬었기 때문에 ‘Purpose Driven Life (‘목적이 이끄는 삶’, 릭 워렌)’에 다시 한번 관심을 가졌었고, ‘Desiring God(‘하나님을 기뻐하라’, 존 파이퍼)을 읽으며 깊은 생각에 빠지기도 했었다.

지난 주에 이 두 목사님이 연결되는 순간이 있었다. John Piper 목사님이 계속 이어오시던 Desiring God National Conference의 2010년 주제는 “Think: The Life of the Mind & the Love of God“였는데, 많은 이의 호기심과 비판과 지탄과 격려 속에서 파이퍼 목사님이 릭 워렌 목사님을 초청한 것이다. 파이퍼 목사님과 같이 개혁/보수신학쪽에 있는 사람들은 워렌 목사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유는 신학이 너무 자유적이고 “자본주의/마케팅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여튼, 파이퍼 목사님의 생각은 좀 달랐고, 워렌 목사님은 초청되었다. (그러나 워렌 목사님은 실제로 컨퍼런스에 참석은 하지 못했다. 워렌 목사님이 컨퍼런스 일주일 전에 여러가지 일로 세번을 응급실을 다녀오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Battle for the Mind라는 주제로 이어진 워렌 목사님의 강연 내용은 언제나 그렇듯이 “깔끔했다” 그러면서도 해야 할 얘기를 다했다. (서론이 너무 길어졌는데) 목사님의 키노트 중 인상 깊었던 내용이 있다. 바로 ‘학습’은 평생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마치 피터 드러커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학습에는 5가지 레벨이 있다는 것이다.

1. 지식(knowledge) – 단순한 사실들을 인식하고 이를 “아는” 단계
2. 관점(perspective) – 워렌 목사님은 이를 다시 지혜(wisdom)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즉, 지식의 바다에서 하나의 관점을 가지고 볼 수 있으며 의미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3. 신념(conviction) – 관점, 또는 안목을 가지고 세상을 보다보면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엇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판단/분별이 생기고, 결국에는 그것이 믿음으로 승화된다. 신념이 있는 제대로 있는 사람은 무서운 것이, 이 사람은 그 ‘신념’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4. 인격(character) – 신념을 가지고 행동을 하다보면 그것을 이루기 위한 습관이 생겨나게 되고, 습관이 반복적으로 쌓이고 쌓이다 보면 그 습관은 결국 그 사람의 인격이 된다는 것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결국 신념에서 인격으로 넘어가는 그 단계는 생각에서 행동으로 넘어가는 단계이며, 실제적인 영향력은 여기에서 나오게 된다.
5. 실력(skills) – 어떤 것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습관적으로 반복적으로 인격으로 배어나올만큼 열심히 하다보면 그 사람은 결국 그것을 아주 “잘” 하게 된다. 즉, 남들이 모르는 많은 비법과 노하우와 경험을 가지고 남들보다 탁월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주워담은 지식에서 시작해서 실력의 단계까지 가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전인적인 성장이 필요하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니며, 그 전 단계가 없으면 그 다음 단계가 건강하게 생성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모르기 때문에 지혜가 없고, 지혜가 없기 때문에 믿음이 안 생기고, 믿음이 없기 때문에 인격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인격이 없기 때문에 잘 하지 못하고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것이 우리 대부분 사람들의 싸이클이다.

무엇이 사람을 움직이는가.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가.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John Hagel은 현재 “Push to Pull”로 변해가는 이 세상에서 실제적으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역량은 “열정”에서 나온다고 했다. 열정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몰입의 즐거움”에서 말하는 순간적인 몰입력과 집중력보다도 뛰어난 것이며, 이것을 할 줄 아는 사람이 21세기 웹 2.0 분산화 소셜미디어 시대에 새로운 리더로 부상할 수 있다고 했다.

인터넷 카페는 어떻게 운영하는 것이 건강할까? 소셜 미디어에서 정말로 사람들이 버즈를 일으키게 하려면? 내 서비스의 열정적인 팬 군단을 만들 수 있다면?

열정. 21세기 성공의 마법의 열쇠다.

플랫폼 제공자의 변심 (새로운 트위터를 보고)

트위터 새 버전이 어제 발표되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기능이 매우 풍부해졌다. 비디오도 볼 수 있고 사진도 볼 수 있고 피드도 무제한 자동 스크롤되고 마우스 쓸 필요없이 키보드 shortcut도 생겼다. 전체적으로 구경하고 보는 체류시간이 늘어난 서비스가 되었다. (“tweet” 버튼이 평소에 보이지 않게 된 것 역시 그런 문맥에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것일까?) 그 결과 우리는 트위터 홈페이지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고 종종 보이게 되는 Sponsored Tweet을 읽게 될 것이고, 트위터는 광고 수익을 늘리게 될 것이다.

더 큰 그림을 그려보자면: 사람들이 다시 twitter.com으로 돌아온다! OpenAPI를 아름답게 사용하며 각종 기능을 만들었던 많은 트위터 파생 서비스들에게 이보다 더 무서운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과거 웹 2.0 서비스들이 우후죽순 나올 때 모두가 항상 갖는 피해가기 어려운 질문이 있었다. “구글이 이 서비스를 만들면 어쩌지?” 트위터에게도 같은 질문을 가질 수 있다.

플랫폼 제공 사업은 절대 자선사업이 아니다. 플랫폼 제공자와 플랫폼 사용자의 관계는 언제나 공생관계이다. “오픈”은 좋지만 핵심이 되는 이속은 항상 챙겨야 더 훌륭한 플랫폼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극심한 자본주의 속에서 번창하고 있는 웹 비지니스의 현실이다. 얼만큼을 쥘 것인가, 얼만큼을 내어놓을 것인가는 사업자의 도덕적인 결정으로 보여질 때도 있지만, 사실은 전략적인 결정일 때가 더 많을 것이다. 트위터가 OpenAPI를 그렇게 많이 제공해놓고도 서비스를 추가한 것은 추가되는 서비스가 그만큼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 중 트위터는 결론적으로 광고를 가져가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트위터의 서비스 업그레이드가 트위터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분명 더욱 창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도 생겨날 것이다. 모바일과 기타 통계 서비스 등은 아무래도 타격이 덜 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개인적으로는 “오픈”이라는 것은 (전략적인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오픈”은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새로운 기회의 제공이라는 차원에서는 환영받아야 할 일이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p.s.
기업이 과연 얼만큼을 나누어 주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균형 잡힌 시각을 키우고 싶다면 “지속가능성”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연구를 해보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된다. 나누어 준다는 것은 그 대상이 참으로 많기 때문이다. 사용자/고객. 협력자. 직원. 주주. 사회. 지구까지도. 국제표준이 된 ISO 26000에서는 “사회적으로 착한 기업”의 표준이 마련되었다. 아쉽게도 “환경적으로 착한 기업”은 너무 개념이 애매모호해서 ISO에서도 표준을 만들기를 포기한 상태라고 한다.

태우’s log 6번째 생일입니다.

오늘은 태우’s log 6번째 생일입니다. (여기에 첫 흔적)

작년에 거창하게 5주년을 자축하고 나서도 1년이 흘렀습니다.

1년 동안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전에 보던 세상보다 훨씬 더 큰 세상임을 배웠습니다.

이 블로그는 전처럼 활발하진 않아도 태우와 함께 같이 성숙해지고 있습니다.

계속 기억해주시고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흔적(log)은 계속됩니다.

9/11에 대한 나의 기억

2001년 9월 11일의 기억은 (벌써) 9년이(나) 지난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다.

내가 당시 재학중이던 코넬대학교는 뉴욕주의 자그만한 도시인 이타카(Ithaca)라는 도시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뉴욕시에서 차로 4시간이 되지 못하는 가까운(?) 거리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뉴욕주의 여러 도시, 그 중에서도 특히 Long Island, Brooklyn, Queens, Manhattan, Staten Island 등 뉴욕 시내 또는 근교 출신이었다. 내가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은 대부분 한국/중국 2세 교포였는데, 유난히 뉴욕 출신들이 많았다.

당일 아침에 나는 이른 수업이 있어서 수업을 다녀온 후 잠시 눈을 붙였는데 갑자기 여기저기서 전화통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뉴욕 바로 옆에 있는 뉴저지 주에 있는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전화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통화의 대부분의 내용은 “태우야, xxx랑 연락되니? 얘가 어제 밤에 맨하튼 나갔는데 연락이 안 된다. 이를 어쩌지?”였다.

한 사촌 동생은 맨하튼 아래쪽인 NYU 재학 중이었고, Parsons에 다니면서 저 아래 쪽에서 지하철타고 등교하는 친구들도 여럿이었으며, 몇 명은 아예 월가에서 일하는 친구들이었다. 나도 놀란 마음에 여기저기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고, 아니나 다를까 연락이 되는 지인은 하나도 없었다.

아직 “시민 언론”이라 부를만큼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어서 올리거나 하지도 못했고, 이 당시는 flickr나 youtube도 아직 태어나기 전이었으므로, 유일한 소식통은 CNN, NBC, Fox와 같은 TV뉴스채널들과 이들의 웹사이트였다.

더 이야기를 읽고 찾아보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볼 수록 그 사태의 무게가 나의 가슴을 짖이겼고 이해할 수 없는 그 충격에 전교생이 학교 마당으로 나와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던 기억만 난다. 캠퍼스 어디를 가더라도 웃는 사람은 볼 수 없었고, 수업은 취소되고 사람들은 정신 나간듯이 캠퍼스를 헤집고 다녔다. 이런 증상은 그 후 몇 일동안 계속되어 갔다. 교수님들도 수업시간마다 한 5분은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라는 설교와 함께 수업을 시작했다.

모든 사태가 그렇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한 두 명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친구 하나는 여름에 쌍둥이빌딩에서 인턴을 했었는데 자기와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연락이 되지 않아서 마음을 졸이고 있었는데, 다행히 그 층은 비행기가 부딪힌 곳보다 낮은 층이었고 다행히 일찍이 움직이게 되어서 몇 명은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다고 나중에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내 룸메이트의 외삼촌은 근처에서 일을 하는 의사였는데 쌍둥이빌딩에 불이 나는 걸 보고 동료 의사와 그걸 보러나갔다가 갑자기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달렸는데, 달리다 보니 옆에 같이 달리던 의사 동료가 없어져서 돌아보니까, 건물에서 날아온 파편에 맞아서 사망한 것을 보았다고 했다. 친한 친구 하나는 살짝 좀 떨어져 있었는데 베란다로 무슨 일인가 그 쪽을 바라보는 순간 빌딩이 무너지면서 일어난 먼지 폭풍이 자기에게로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걸 보고 “난 죽었구나” 했는데 다행히 베란다가 닫혀 있어서 살았다고 했다. 친구 하나는 Queens 사이드에서, 친척 하나는 New Jersey 사이드에서 두 건물이 시간차를 두고 무너지는 걸 목격했다고 한다. 한 친구는 같이 수업을 듣는 학우 하나가 갑자기 아버지에게 전화가 와서 이건 아버지 마지막 통화라고 사랑한다고 말을 하고 나서는 전화가 끊겼다고 한다.

이 날의 충격보다 더 무서운 것은 911사태 이후 미국사회에의 여파였다. 곳곳에서 테러리즘에 대한 민감한 움직임이 보였다. 우리 학교 같은 경우도 잔디에서 주인 없는 봉투가 하나라도 발견되면 탄저병 가방이다 폭탄이다 이러면서 전교생에게 주의를 내리는 공지가 돌았고, 가끔은 술취한 백인 남학생들이 길거리에서 아랍계 여학생들을 때리고 사라지는 hate crime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경제가 급격히 바닥을 치면서 친구들이 구직에 실패하기 시작하고, 나와 같은 유학생들은 더 이상 미국에 발을 붙이기가 곤란해졌다. 당시 졸업반이었던 친구들은 취업을 포기하고 대학원 진학을 노리기 시작했다. 항공편 보안검열이 30분에서 3시간으로 길어진 것도 이 때부터고, 공항을 들락날락하는 나같은 유학생들은 검사관에게 필요없는 기분 나쁜 인종차별을 받기도 했다. 괜히 길거리에서도 나를 “You North Koreans, get rid of the fxxxing nukes” 이러면서 놀리는 몰상식한 사람들도 늘어났다. (참고로 미국에는 남북한, 중국, 일본, 대만 사람들의 차이를 구분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깔렸다. 마치 우리가 헝가리, 루마니아, 오스트리아를, 또는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코스타리카를 비슷하게 보는 것처럼.)

전쟁, 제국주의. 이런 얘기는 아마 여기에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바쁘게 살아가는 와중에도, 그리고 9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9/11의 기억(어찌보면 악몽)은 어김없이 돌아온다.

오늘 이 글은 누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기보단 스스로에게 남기는 메모와 같은 글이다. 기술을 통한 극도의 낙관주의가 발전하고 인류의 가능성에 대해서 소망을 키워가는 지금도 우리는 변함없는 문제를 앞에 두고 있다: 전쟁, 기아, 죽음, 기후 등. 우리의 노력으로 과연 궁극적인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오늘도 내 머리를 맴돈다.